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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영 칼럼] 교권과 학생인권조례

시대일보 | 기사입력 2023/10/05 [10:09]

[이한영 칼럼] 교권과 학생인권조례

시대일보 | 입력 : 2023/10/05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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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한영 칼럼니스트    

[시대일보]최근 학부모의 폭언과 고발 등 교권 침해에 대한 사건들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 교사 중 87%가 이직이나 사직을 고민하고, 26.6%는 정신과 상담을 받은 경험이 있다고 한다. 학교에서의 생활지도에 대해 아동학대로 고발당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또한 몸이 아파 병가를 낸 선생님에게 전화로 고성과 욕설과 협박을 했던 학부모의 녹음파일이 방송을 통해 전해지기도 했다. 안타깝게 생을 마감한 선생님들까지 있다는 것은 학교 내에서 교권 추락이 매우 심각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런 교권 침해 사건이 발생하면서 학생인권조례가 도마 위에 올랐다. 교권 회복을 위해 학생인권조례를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학생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조례로 인해 교권 침해가 성행한다고 말한다. 그들의 주장대로 학생인권조례가 교권 침해의 원인이고, 학생인권조례가 폐지되면 교권이 회복될지는 의문이다. 왜냐하면 조례가 시행되기 전인 2010년 이전에도 교권 침해는 존재했었기 때문이다. 

 

교권회복을 위해 학생인권조례를 폐지 해야 한다는 사람들을 보면서, 몇 년 전 영국에서 있었던 일들이 떠올랐다. 코로나19가 한창이던 2020년 영국에서는 웃지 못할 사건들이 발생했었다. 5G 기지국을 향한 잇단 방화 사건이 그것이다. 팬데믹으로 인한 사망자가 속출하고 사회 경제가 마비되는 최악의 상태를 마주하고 있을때, 누군가 영국의 바이러스 감염자가 확산하는 지역과 5G 통신망이 설치되어있는 지역이 일치하다는 것을 발견한다. 이런 사실은 SNS를 통해 급속도로 퍼져나갔다. 사실대로 바이러스 확진자가 많은 지역과 5G 기지국의 위치는 정확히 같았다. 이를 토대로 많은 사람이 바이러스와 5G가 연관이 있다고 판단했고, 자신과 가족을 지키고자 행동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그로 인해 애꿎은 5G 통신탑이 봉변당했 것이다. 이 사건은 전 세계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됐고, 영국 정부는 말도 안 되는 음모론이라고 국민을 설득해야 했다. 방화를 주도했던 사람들의 행동력에는 감탄했지만, 문제는 방향성이다. 핸드폰 주파수가 인체에 해롭다는 유사 과학(과학적 사실이 아니면서 과학처럼 포장하는 것)이 우리나라에서도 퍼져있듯, 영국에서도 이런 잘못된 이야기가 퍼져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사건이었다. 이렇듯 사람의 공포심은 논리적인 의사결정을 방해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왜 바이러스 확진자 지도와 5G 통신망 설치 지도가 같았을까? 이 둘은 인과관계는 없지만, 상관관계로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인구밀도가 높은 지역에서 많은 확진자가 발생한 것과 도심에 우선 설치된 기지국 때문에 생겨난 헤프닝 이었다. 5G 기지국 때문에 바이러스가 퍼진 것이 아니고 반대의 요건도 성립되지 않는다. 인과관계를 파악하지 못하고 상관관계만으로 잘못된 방향성을 잡은 것이다. 다른 예로 아이스크림이 많이 팔리면 익사자가 많이 나온다는 통계가 있다. 이 글을 읽고 계신 분이라면 그 통계의 관계성을 금방 이해하실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아이스크림과 익사자는 상관관계에 해당하고 날씨가 더운 여름이 인과관계이다. 날씨가 더우므로 물놀이를 많이 가면서 익사 사고의 비율이 높아지고, 날씨가 더우므로 시원한 아이스크림의 판매량이 증가한 것이다. 만약 익사자를 줄이기 위해 아이스크림 판매를 중단한다면 영국의 5G 통신망 화재 사건과 같은 상황일 것이다. 비슷한 예로 자살률을 낮추는 방안 중 유해 번개탄 생산 금지가 포함 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지원금으로 출산율을 높이겠다는 것도, 학생인권조례를 폐지해야 한다는 말도 이와 같다.

 

쉽게 눈에 보이는 현상에만 집중하는 것은 문제의 근본을 변화시킬 수 없다. 근본을 변화 시킬 수 없다면 미봉책에 불과하다. 권리와 의무는 공존할 때 건강한 사회가 형성된다. 권리에만 집중하는 것도, 의무만 강요하는 것도 사회를 병들게 만든다. 학생인권조례에서 학생의 권리만 강조했다면 의무도 함께 포함해야 하고, 외국의 사례와 같이 교사의 권리도 명시되어야 한다. 나아가 학생들의 정상적인 학습권을 확보하기 위해 학부모의 역할도 포함되는 개정안이 필요하다.

 

학생인권조례는 학교 교육과정에서 학생의 존엄과 가치 및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교육청들의 조례이다. 이 안에는 학생 개개인의 학습권도 포함되어있다. 과거 전체주의적 교육방식에서 학생 인권이 무시 되었던 것을 보완하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이다.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기 위해 타인의 권리를 침해해서는 안된다”는 인권의 기본 전제를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들로 인해 악용되어서는 안된다. 학생과 학부모의 교권 침해는 인권 의식의 부재로부터 출발한다. 이것이 모두에게 제대로 된 인권교육이 필요한 이유이다.

 

교권과 학생인권조례를 두고, 마치 서로의 권리가 충돌하는 것처럼 이야기하는 사람들을 주의해야 한다. 이 두 개는 모두 학생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학생들이 우리의 미래라고 말하는 이유를 생각해 보자. 교권이 무너지면 가장 피해를 받는 사람은 학생일 것이다. 학교를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 거치는 과정으로만 생각해서는 안된다. 학교는 지식 전달이 목적인 학원과 다르다. 아이들이 좋은 사람으로 성장하기 위해서 좋은 선생님이 있어야 한다. 그런 좋은 선생님들이 학생들 곁을 지킬 수 있게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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