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일보]내가 기준이 되지 않는 한 세상에서 벌어지는 그 어떤 일들도 이해 못 할 것이 없다.
한발 더 나아가 생각해보면 기준에 기대어 살다 보면 하나같이 모순투성이고 범법자다. 이유는 법치주의 국가에 살기 때문이다.법은 지키라고 있는 것이지만 법을 온전히 지키는 사람은 없다.
따라서 법은 걸리는 사람을 처벌함으로써 법의 준엄함을 알려 범법자를 줄여 보자는 것뿐이다.
누구도 이 법 앞에 자유로울 수는 없다. 지키지 못하는 법을 만들어 놓았기 때문인데 혹자들은 법 없어도 살 사람이라는 평을 받고 살기도 한다.
그러나 모두를 범법자로 만드는 법은 당연히 사라져야 마땅한데 법 없이는 질서가 유지되지 않기에 쉽사리 법의 장막을 거둬들일 수도 없다.
법은 ‘이현령 비현령’이다. 귀에 걸면 귀걸이가 되고 코에 걸면 코걸이가 된다.그 법을 만드는 곳이 입법기관인 국회의원들이다.
그들도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법(덫)에 걸려 넘어지기 십상이다.
인간은 질서를 유지하며 살 수 없다.
자유로운 영혼을 갖고 태어났기에 그 자유를 억압하면 견딜 수 없는 존재다.
그러면서도 그 자유를 구속하는 목줄(법)을 인간이 만들어 놓았다.
자유가 훼방을 받기 때문에 그랬다.
인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은 바로 인간이다.
인간은 인간을 머리에 얹고 살지 못한다. 인간은 누구나 동일한 인권을 보장받고 태어났기에 결코 인간을 위로 섬기지 못하고 밟히면 반드시 되갚음을 한다.
인간은 사고능력이 뛰어나 짐승 같은 단순함이 아니기에 어디로 튈지를 누구도 가늠하기 어렵다.
이제 인간을 법이라는 테두리와 굴레에서 벗어나도록 해야 한다.
법 없어도 살 수 있도록 그들에게 진정한 자유 함을 찾도록 해야 할 때다.
‘누구든지 죄 없는 자는 이 간음한 여인을 돌을 들어 쳐라’ 이것이 성서의 주인공인 예수의 말이다.
당시에도 작금의 현실과 동일한 법치주의였고 간음하다 잡히면 돌에 맞아 죽어야 하는 법률이 적용됐다.
이때 이 여인을 기세등등 끌고 왔던 뭇사람들은 예수의 그 말 한마디에 돌을 내려놓고 모두 돌아섰다.
우리를 인간이 만든 법에서 해방 시킨 최초의 사건이다.
아무리 대단한 법도 마음을 정죄하거나 다스릴 수는 없다.
우리 인간의 행동을 법치로 다스릴 수는 있지만 그 마음까지는 어쩌지 못한다.
다시 말하면 마음을 어떤 법으로도 꺾을 수는 없기에 현행 규범은 그저 나뭇가지(곁가지)를 정리하는 정도이며 영어의 신체로 만들 뿐 마음 마져 묶거나 가둬둘 수는 없다.
예수는 마음을 다스리고 치유하면 법이라는 굴레는 무용지물임을 단적이고 확실하게 인간에게 각인시켰다.
당시 율법(법률) 아래 놓여 있던 이스라엘 민족에게 가히 혁명적인 새로운 법을 선포함과 동시 정죄 아닌 사죄의 길을 열어놓은 것이다.
필자는 세상법을 없애자는 것이 아니라 법의 존재가치를 무용지물로 만들기 위한 마인드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인간의 마음이 강퍅해질수록 이를 제어하기 위한 시스템은 처벌을 강화하는 법령을 제정하는 길뿐이고 보면 이 또한 미봉책이고 이로 인해 인간의 존엄이 결국 법에 의해 짓밟히는 우를 범하게 된다.
인간을 먹고 사는 경쟁의 논리로 내몰면 결국 양육강식의 동물로 변하게 된다.
어쩔 수 없는 현상이 아니냐고 반문도 하겠지만 이 같은 현상의 결과는 잔인하고 소위 인정머리 없는 세상, 인정이라곤 눈씻고 찾아볼 수 없는, 누구도 믿을 수 없는 그런 세상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지금부터라도 세상을 바꿔 나가자.
먹고 사는 문제보다 마음을 살찌게 하는 법을 가르치자.
마음이 가난한 자는 천국이 저희의 것이라 했다.
눈에 보이는 가진 것보다 마음을 가난하게 만드는 법을 깨닫게 해 부유하고 넉넉한 삶을 살아가도록, 인간답게 사는 법을 모태에서부터 가르치자.
세상이 밝아지고 세상이 온통 천국으로 화 해지도록...
지금은 잘사는 사람 못하는 사람 모두에게 지옥임을 누가 아니라고 강변할 자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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