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 반도체특별법 이후, 우리는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 CHIPS Act 앞에서 드러난 국가 전략의 온도차
[시대일보=김명회 기자]국회가 「반도체산업 경쟁력 강화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을 통과시킨 것은 늦었지만 의미 있는 결정이다. 반도체를 더 이상 개별 기업의 투자 영역이 아니라 국가 전략산업으로 명문화했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러나 법의 통과가 곧 경쟁력 확보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지금 세계는 반도체를 둘러싼 속도전·자금전·패권전에 이미 돌입해 있다.
한국의 반도체특별법과 미국의 CHIPS Act를 나란히 놓고 보면, 같은 위기를 바라보는 두 나라의 정책 체온 차가 분명히 드러난다. 한국은 반도체를 ‘잘 키워야 할 산업’으로 본다. 미국은 반도체를 ‘잃으면 안 되는 국가 자산’으로 본다. 이 차이가 정책의 깊이와 수단을 갈라놓는다.
한국의 반도체특별법은 전력·용수·도로 등 기반시설에 대한 국가 책임을 명문화하고, 반도체 클러스터 지정과 인허가 특례를 제도화했다. 평택·용인·이천으로 이어지는 수도권 반도체 벨트를 사실상 국가 산업 인프라로 끌어올렸다는 점에서 진일보한 접근이다. 지금까지 기업과 지자체가 떠안아왔던 구조적 부담을 국가가 뒤늦게 제도화한 셈이다. 그러나 이 법은 결정적인 질문을 비켜간다. 국가는 어디까지 책임질 것인가.
특별회계 설치 근거는 마련했지만, 지원 규모는 비어 있고, 투자 보조금이나 파격적인 세제 인센티브는 담지 못했다. 반도체 산업의 가장 민감한 쟁점인 연구·개발 인력 운용의 유연성 문제 역시 정치적 부담 속에 빠져버렸다. 법은 만들어졌지만, 싸움에 필요한 무기는 충분히 쥐여주지 않은 셈이다.
반면 미국의 CHIPS Act는 결이 다르다. 미국은 반도체를 시장에 맡기지 않았다. 대규모 현금 보조금과 25% 투자 세액공제를 전면에 내세워 기업의 선택지를 사실상 규정했다. 이 법의 본질은 산업 육성이 아니라 공급망 재배치이고, 궁극적으로는 기술 패권의 재편이다. 삼성과 SK하이닉스가 미국에 공장을 짓는 이유는 노동비용이나 시장 접근성 때문이 아니다. 정책이 그렇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CHIPS Act는 ‘유인’의 탈을 쓴 국가 동원령에 가깝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미국의 반도체 정책이 자국 산업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동맹국 기업까지 흡수해 자국 중심의 생태계를 구축하는 전략이라는 점에서, 한국의 산업 정책과 정면으로 교차한다.
이 차이는 곧 평택·용인·이천 반도체 클러스터의 미래와 직결된다. 한국 정부가 아무리 세계 최대 반도체 벨트를 강조해도, 글로벌 기업의 투자 결정은 냉정하다. 전력은 안정적인가, 인허가는 얼마나 빠른가, 그리고 무엇보다 국가가 얼마나 책임지는가를 묻는다.
반도체특별법은 출발선에 불과하다. 이제는 ‘제도 정비’에서 ‘국가 전략’으로 넘어가야 한다. 첫째, 특별회계를 실제 재정 전략으로 전환해야 한다. 선언적 근거가 아니라, 전략 분야에 집중 투입할 수 있는 실질적 재원 설계가 필요하다.
둘째, 전력·용수 문제를 산업 행정이 아니라 국가 안보 사안으로 다뤄야 한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의 전력 논란은 행정 지연이 아니라 전략 부재의 신호다.
셋째, 한·미 협력의 이름 아래 한국 기업의 투자와 기술이 일방적으로 종속되지 않도록 정부 차원의 조건 협상이 필요하다. 반도체는 기다려주지 않는다. 정책의 속도와 결단이 곧 경쟁력이다. 반도체특별법은 한국이 이제야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는 증거다. 이제 남은 것은 답이다.
반도체를 국가 전략이라 부를 것인가, 아니면 여전히 기업의 판단에 맡길 것인가. 선택의 시간은 길지 않다. <저작권자 ⓒ 시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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