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일보]카터 전 미 대통령이 개인 자격이지만 급거 평양으로 가서 김일성을 만나는 등 1차 북한 핵 위기가 고조되고 있을 때인 1994년 6월, 나는 마침 로마에 있었다.
로마는 물론 유럽의 언론들이 북한 핵 위기를 대대적으로 다루고 있었으며, 곧 전쟁이 날 것 같은 긴장감이 감돌았다. 이런 분위기 속에 내가 만나는 유럽 사람들은 예외 없이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당신네 나라에서 전쟁이 날 것이냐?”라고 묻기도 하고“북한 핵무기만 무서워하지 말고 남한에서도 핵무기를 개발하면 되지 않느냐?”라고 훈수를 두기도 했다.
특히 그곳에 나와 있는 우리 유학생들이나 교포들은 더 불안해했다. 어떤 학생은 유학을 포기하고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다고도 했다.
그로부터 3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북한 핵 위협은 계속되고 있고 마침내 김정은이 직접 우라늄 농축 시설을 대놓고 세계에 보란 듯 공개했으며 미국 대선을 앞두고 제7차 핵실험을 할 것인지 주목을 끌고 있다.
그 7차 핵실험이 트럼프 공화당 후보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는 계산까지 깔고 있다니 어느 사이에 이렇게 북한 핵이 미국 대통령 선거에까지 영향을 주는 유령으로 성장했는가?
또한 북한 핵 위협 30년, 그때나 지금이나 외국에 나가면 “한반도에 전쟁이 날 것이냐?”라는 질문은 계속되고 있으니 앞으로도 언제까지 이 질문을 받아야 할지 당혹스럽다.
전문가들은 김정은이 보여준 우라늄 농축 시설이 HEU(고농축 우라늄) 연간 3,000kg 생산이 가능하고, 그동안 200개의 핵탄두를 보유할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런 데다 미사일 성능도 꾸준히 발전시켜 단거리 탄도 미사일에서부터 중·장거리 미사일에까지 도발적 발사를 계속하고 있다.
그 거리가 평택 미군기지, 육해공군 본부가 있는 계룡대, 더 나아가 일본, 오키나와에서부터 미국 본토에까지 핵 공격이 가능하다는 불편한 계산도 나온다.
그러니 ‘한국은 안전한가?’라는 질문을 30년이나 계속 받아온 것은 자연스러울 것이다. 문제는 이와 같은 북한의 핵 역량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도 2018년 문재인 전 대통령은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을 평양에 보내 김정은을 만나게 했는데 그는 평양에서 돌아와 “북한이 비핵화 입장을 분명히 했다”라고 밝혔다. 그는 김정은이 비핵화에 대한 목표는 ‘선대의 유훈’이라며 변함이 없다고까지 했다.
문 전 대통령은 이와 같은 북한 입장을 당시 트럼프 미 대통령에 전달했고, 마침내 그해 6월 트럼프-김정은 회담이 성사됐지만, 그 결과는 허무한 것으로 끝났다. 문재인 정부의 오판이었다.
대규모 우라늄 농축 시설이 오판이었음을, 그리고 지난 9월 19일 북한이 탄두 중량을 4.5톤까지 늘린 신형 단거리 탄도 미사일(SRBM)을 발사, 내륙 표적에 명중시킨 장면을 공개한 것이 또한 그것을 증명한다.
그러나 문 전 대통령은 9·19 평양 공동선언 6주년 기념식에서 기조연설을 통해 ‘9·19 군사합의는 한반도의 군사적 상황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평화의 안전핀 역할을 충실히 했다’라며 현 정부의 안보 위기관리를 비난했다. 여전히 자신의 오판을 정당화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이날 문재인 정부 때 통일 안보를 담당했던 인사들 입에서 ‘통일은 하지 말자’라며 반헌법적 발언을 하고 있으니 김정은이 남·북 2개국 선언이 나온 후여서 당혹스럽기만 하다. 이처럼 북한은 남남갈등을 부추기고 있는데 우리의 일부 정치인들은 그에 장단이라도 맞추려는 것 같아 정말 안타깝다.
그것이 자신들의 오판을 합리화하기 위한 것이라면 더욱 그렇다.
<저작권자 ⓒ 시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
변평섭의 세상 이야기 관련기사목록
|
많이 본 기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