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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천구의회 엄샛별 복지건설위원장, 시흥농민봉기 120주년 기념사업 추진 간담회 개최

- “금천구의 근현대사를 되짚어 보고, 120년 전 자랑스런 항일, 항쟁의 역사를 기록하고 기념하여 뉴라이트 등 왜곡된 역사해석을 바로 잡자.”
- “금천구청, 범구민적인 참여 위한 학술용역에 만전 기하길”

강형구 기자 | 기사입력 2024/09/03 [17:45]

금천구의회 엄샛별 복지건설위원장, 시흥농민봉기 120주년 기념사업 추진 간담회 개최

- “금천구의 근현대사를 되짚어 보고, 120년 전 자랑스런 항일, 항쟁의 역사를 기록하고 기념하여 뉴라이트 등 왜곡된 역사해석을 바로 잡자.”
- “금천구청, 범구민적인 참여 위한 학술용역에 만전 기하길”

강형구 기자 | 입력 : 2024/09/03 [17:45]

▲ 시흥농민봉기 120주년 기념사업 추진 간담회 단체사진

 

▲ 시흥농민봉기 120주년 기념사업 추진 간담회 – 엄샛별 의원 주재

 


[시대일보=강형구 기자] 2024년 9월 14일은 시흥농민봉기가 일어난지 120주년 되는 날이다. 

이에, 2024년 8월 30일 금천구의회 엄샛별 복지건설위원장은 구의회 대회의실에서 열린 시흥농민봉기 120주년 기념사업 추진간담회에서 금천구 역사를 바로 알고 보존하여 금천구민 및 서울시민에게 알려주는 사업을 제안받았다.

 

문화역사포럼 장제모 대표는 시흥농민봉기 120주년을 맞아 시흥농민봉기 기념사업을 위한 위원회를 만들어 빛이 바래지고 있는 민족정기를 이어 나가 역사를 되짚어 바로 알고 미래세대에 연결하자고 발언하면서 금천구만의 차별적인 행사계획에 힘을 보태겠다고 하였다.

 

사단법인 마을인교육 최석희 이사는 ”집회가 시작된 한천교가 지금의 금천구 시흥대교 밑으로 추정되는데, 인터넷 검색창에 시흥농민봉기를 검색해 보면 장소의 표기가 광명으로 기록되어 있는 부분이 있다. 학술적 검증으로 역사를 되짚어 바로 잡고 금천의 문화유산 계승을 위한 구청의 노력을 촉구한다“고 하였다.

 

마을인교육 오현애 운영위원장은 ”지역에서는 몇 년 전부터 마을교과서, 지역신문사 아이엔 등에서 시흥농민봉기를 다루고 있었지만 이를 기념할 수 있는 표지석 조차 없었다. 120주년 기념사업, 표지석 만들기 추진이 이번 엄샛별 위원장이 발의 예정인 서울특별시 금천구 문화유산 조례와 함께 맞춰 가면 좋겠다“고 발언하였다. 또한 항일항쟁에 앞장섰던 성우경 선생의 정신을 기려 애국지사에 추대하자는 의견도 내세웠다.

 

간담회에 참석한 전문가들 또한 중장기 계획을 세워 시흥농민봉기 기록작업을 통해 한자와 구어체로 구성된 역사 기록을 쉽게 번역하여 시민 및 아이들 누구나 어려움 없이 접할 수 있도록 대중화해야 한다고 의견을 모았는데 금천구 개청 30주년인 2025년, ‘금천구 시흥농민봉기의 자랑스런 근현대 역사를 알리는 계기를 열어야 한다고 밝혔다.

 

그밖에 간담회 참석자들이 주장한 내용으로는 ▲지속적인 전문가·주민 토론회 개최, ▲많은 자료 축적, ▲역사적 자료 고증 위한 전문가 의뢰, ▲시흥농민봉기 120주년 기념사업 추진을 위한 위원회 설치 및 운영, ▲대중화를 위한 홍보 등이다. 특히, 민간에서 추진하는 것은 한계가 있기 때문에 구청이 사업을 위한 다각적인 노력을 해줘야 한다고 간담회 참석자들은 한목소리로 주장하였다.

 

엄샛별 복지건설위원장은 "금천구의 잃어버렸던 역사, 행정에서 놓치고 있었던 금천구의 자랑스러운 역사이다. 구민의 자긍심을 제고하기 위해 추진하는 기념사업도 중요하지만, 이를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학술적 검증과 주민 공론화 과정 등이 기념사업에 포함되어야 한다.”고 촉구하였다.

 

한편, 시흥농민봉기는 1904년(고종 41) 러일전쟁의 전운이 감도는 가운데, 일본이 조선 정부를 압박해 러일전쟁 수행에 필요한 한국인 역부를 강제로 동원하여 철도를 연결하는 공사를 시행코자 하였는데, 일본인의 역부 강제 모집과 지방관의 고압적인 태도에 반발하여 발생한 저항 운동으로서, 일제의 침략과 관련한 시흥 군민의 항일 의식이 강하게 표출된 사건이다.

 

특히 향회를 개최하여 향촌민들의 의견을 효과적으로 수령하였다는 점에서 근대적인 농민 의식의 성장을 찾아볼 수 있다.

 

또한 향회의 취회 과정에서 공동체의 강제력을 발휘하여 동원 체제의 실효성을 달성하였고, 각 면의 집강들을 통해 농민들을 조직적으로 동원하였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아울러 역부 모집의 부당성을 『황성신문』을 통해 대외에 알리고자 하였다는 점은 우리나라 근대 농민 운동사에서 최초로 시도된 방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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