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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의호의 思考] 일만 악의 뿌리에 나를 가둬 놓고 빗돌에 새길 문구 하나 없는 삶

개같이 벌면 개같이 쓴다- 천상병 시인의 歸天을 그날  노래하자

유의호 편집국장 | 기사입력 2024/05/01 [11:08]

[유의호의 思考] 일만 악의 뿌리에 나를 가둬 놓고 빗돌에 새길 문구 하나 없는 삶

개같이 벌면 개같이 쓴다- 천상병 시인의 歸天을 그날  노래하자

유의호 편집국장 | 입력 : 2024/05/01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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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의호 본지 편집국장.    

[시대일보​]나보다 잘난 사람도 못난 사람도 없다.

 

돈은 돈일뿐이고 지위는 지위일 뿐이다.

 

남보다 잘나 보려고 노력한들 결국 나는 나일 뿐이고 돈을 아무리 많이 소유하고 지위가 천하의 으뜸이 된다해도 내가 소망하거나 소원하는 것을 충족시키지는 못한다.

 

인간은 극히도 자유로운 영혼이길 원한다.

 

이 자유로움은 물질이나 권력으로 뒷받침 되지 않는다.

 

자기 안에 갇혀사는 자유적 갈망은 인간이면 누구나 이에서 해방되길 바라지만 어떻게 빠져 나와야 하는지를 알지 못해 그 고통속에서 몸부림 칠 뿐이다.

 

실제로 육체는 껍질일 뿐이며 내가 소유하고 있는 모든 것은 그 껍질의 양분에 불과하다.

 

물질만능주의 세상이지만 그 물질이 결코 나를 만족시키지 못한다면 굳이 그 물질의 노예가 되는 삶을 지양해야 함은 불문가지이다.

 

성경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일만악의 뿌리가 돈이다.(딤전 6:8~10)

 

돈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에 빠져 근심하게 되고 결국 이돈이 자기를 찌르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했다.

 

권력도 마찬가지이다. 목적은 부귀영화로 직결되기에 말로는 권력을 통해 선정을 베풀겠다고 하지만 그 선정의 끝은 결국 자기몰락이다.

 

모든 중심이 ‘나’이고 보면 권력도 금력도 ‘나’의 만족을 위해 존재할 뿐이다.

 

하지만 그 만족의 산물은 무엇일까를 고민해 봐야 한다.

 

나는 아니라고 부정하지만 누구나 욕망에 사로잡혀 일생동안 욕망에 이끌려 살아가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동안 수많은 철학자 또는 신학자들이 삶의 지침서이자 나침반같은 주옥같은 말들을 쏟아내고 진리를 주창해 왔지만 세상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고 자신들도 그 진리에 편승된 삶을 구가하며 살지 못했다.

 

다시 말하면 눈에 보이는 것을 쫓음에 조금도 게을리하지 않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눈감고 명상할때만 기억에서 끄집어 내고 단상에 서서 강의할때만 필요한 것으로 치부했다.

 

그 열매를 보고 그 나무를 평가한다고 했다.

 

나는 어떤 열매를 맺혔을까?!

 

진정 묻고 답해보자.

 

열매는 다름아닌 돈,권력,명예 등등 눈에 보이고 드러난 것들 뿐이다.

 

이 열매가 어떻게 결실되었는가 스스로 반추해보라. 자신의 치부가 드러날 것이다.

 

혹자들은 말한다. 그리고 그 말에 위로 받기로 작심한다.

 

‘개같이 벌어서 정승같이 쓴다’

 

개보다 못한 삶을 통해 끌어모은 온갖 것들을, 목숨을 다해 피땀흘려 쌓아온 것을, 정승처럼 쓰겠다고…

 

언어도단이자 어불성설이다.

 

사람은 동물이면서 동물이 아니다.

 

동물은 자신의 배가 차면 양보한다. 인간은 차고 넘쳐도 결코 나누는 법을 모른다.

 

나누는 것을 가장 어리석은 셈법이라고 모태에서부터  배웠기 때문이다.

 

이것이 인간이며 인간은 동물의 본능과 만물의 영장이라는 두 모습을 동시에 내재하고 있어 누구도 이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하지만 인간이라면 인간답게 살아야 한다.

 

‘먼저 인간이 되라’는 말이 있다. 인간이면서 인간이기를 포기하고 사는게 인간이기에 이같은 명언(?)이 생겨났지 않나 싶다.

 

인간은 인간의 본성을 깨닫고 회복해야 비로소 자신이 어디로 가야할지 눈을 뜨게 되지 않을까 싶다.

 

작금의 삶은 죽기위해 살아가는 막삶에 불과하지만 이 길밖에 아는바도 배운바도 없기에 이 길위에서 동물과 크게 다를바 없는 생존경쟁을 벌이는 것이고 이 경쟁에서 우위를 선점하기 위해 밟고 밟히는 피터짐이 계속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생존을 위해 도(?) 닦을 시간이나 여유는 이미 태어날때부터 부모가, 학교가, 우리 사회가, 아예 그 싹을 잘라버렸다.

 

생존의 법칙마져도 승자승(勝者勝) 원칙만을 가르쳐 지고도 이기는 법, 양보나 미덕은 패자의 변명거리일 뿐이다.

 

인간은 이같은 전쟁같은 삶 속에서 죽고 죽이며 살다가 결국은 흔적도 없이 빗돌에 새길 문구 하나 남기지 못한채 사라져간다.

 

이제 남은 시간이 얼마없다.

 

100세 시대라 하지만 내게 남은 시간은 100에서 뺀 나머지가 아니다.

 

그 끝이 언제 다가올지는 누구도 알지 못한다.

 

세상 끝남이 언제일까가 아니라 내 끝남이 세상 끝임을 자각해야 한다.

 

그 끝이 오기전에 나를 찾아보자.

 

自我(나는 누구인가?)를 찾아 천년이 하루같은 삶을 영위하며 온곳으로 돌아가자.

 

사망(死亡)아닌 귀천(歸天)하자.

 

천상병 시인의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는 귀천을 그날 노래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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