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각의 잣대가 기준은 아니다 … ‘그들도 내가 아닐 수 있다’

유 의 호 <편집국장>

유의호 편집국장 | 기사입력 2021/04/29 [17:14]

내 생각의 잣대가 기준은 아니다 … ‘그들도 내가 아닐 수 있다’

유 의 호 <편집국장>

유의호 편집국장 | 입력 : 2021/04/29 [17:14]

 

 

결국 내 기준이 나를 황폐케 하는데 나는 내 생각을 주된 양식으로 삼는다.

 
옛날 일들을 옛일로 치부하며 나는 추억놀이로 삼고 살아간다.

 
모두가 그립고 고맙고 보고싶어하며 한 사람 한 사람을 추억동산으로 불러 모은다.

 
그땐 그랬지 아마 너의 마음 나의 마음이 우리 마음이었을 거라고 생각의 잣대를 들이민다.

 
한 번도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보지 않은 채 나는 내 생각을 믿었다.

 
동생이 세상을 떠난지 1년이 넘었다.

 
동생의 친한 친구가 동생의 영정앞에서 퉁명스레 원망하듯 내게 말했다.

 
‘형님을 복만이가 다 좋아한 게 아닙니다’라고…

 
나는 ‘그럴 수도 있지 당연하다고 본다’고 대꾸를 했지만 그 말이 시간이 흘러도 뇌리에서 떠나질 않았다.

 
나는 내가 가장 힘들었다고 생각할 때가 많았다. 물론 ‘한다고 했다’며 자위했다.

 
하지만 동생 친구가 그의 죽음 앞에서 내게 전달한 말은 나를 한동안 먹먹하게 했다.

 
‘아! 내 기준이었구나, 내 생각이었구나’

 
나에게 늘 미안한 마음으로 살아왔던 동생의 참마음을 미쳐 헤아리지 못한 것이 있고 그 동생은 내게 자신의 속마음을 내보이지 않았구나! 내가 동생에게는 편안한 존재가 아니었구나…

 
동생 친구가 그 자리에서 왜 내게 그런 말을 했을까.

 
지금도 그 말이 무척이나 힘들고 사색에 빠지게 한다.

 
결국 나는 내 생각만 먹고 살았던 꼴이다.

 
진정 동생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구나.

 
이미 떠났으니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구나.

 
후회와 눈물과 탄식뿐!

 
미안함이 끝없이 밀려오고 그리움도 사뭇치는데 나는 어쩌랴.

 
이런 사실들이 어찌 동생뿐이랴 싶다. 나를 따르고 존중해 줬던 많은 이들이 있다.

 
언제나 한결같이 내 말에 귀를 기울여 주며 내게 큰 힘이 되어준 그들이 있다.

 
늘 감사하고 그리운 그들, 언제 한번쯤 만날 수 있을까.

 
손꼽아 보지만 그냥 우연히 운명처럼 스쳐가는 만남이길 빈다.

 
동생이 형을 외면한 부분이 있듯이 그 해맑았던 그들도 내가 아닐 수 있기에 그냥 추억으로 남기고 싶을 따름이다. 얼마 전 그중 한사람, 중년을 넘긴 한 여인에게 전화를 받았다.

 
옛 이야기를 반추하며 옛 모습으로 살갑게 말을 했다.

 
한동안 ‘선생님앓이’를 하며 지냈고 애틋함으로 그 추억들을 가슴에 넣어둔 채 한 장씩 꺼내서 되새김질을 한다고 했다. 나는 내가 그들의 추억담 가운데 한켠의 주인공으로 남아 있는게 감사했다.

 
지금 당장 만나자고 제의를 했다. 나는 ‘곧 시간을 내 연락을 하겠다’고 화답했다.

 
몇 년이 흘러갔다. 아직도 그 제의는 진행형이다.

 
왜들 옛 추억을 현실 속으로 끄집어 들이지 않는지 알것같다. 사람은 늘 그 자리에 머무른다. 머물렀던 흔적 또한 세월에 씻겨 흔적조차 없으나 그때 그 시절 우리는 그곳에 머물러 있다.

 
없어진 흔적의 언저리를 찾을까 싶어 그때 함께 했던 그들과 꼭 한번만이라도 만나고 싶지만 그 만남은 그 시절에 두고 빛바랜 추억 너머로 마실을 다녀오는게 그 소중했던 기억들을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땐 젊었다. 지금은 늙었다. 늙음은 젊음을 회상할 뿐 되돌아 갈 수 없듯이 추억은 고이 묻어두고 보고 싶을 때 꺼내 보며 회상하는 게 맞다.

 
만남은 자칫 추억마져 삼켜 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동생의 친구에게 그 소릴 듣지 않았다면 난 좀 더 동생을 그리움으로 만날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지금은 그리움과 미안함이 공존 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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