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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12 03:44
 

데스크칼럼 Deskcolumn
 

[思 考] 나를 ‘부인’할때 인간은 행복 (2017-06-26)
나를 ‘인정’할때 인간은 고통


내생각, 내옮음을 믿으면 불행을 초래




“욕심이 잉태한 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 즉 사망을 낳는다”(약1:15)
인간의 궁극적 목표는 ‘만족’이라는 한 단어에 정조준 돼 있다. 그러나 현실은 언제나 ‘불만족’의 연속 이고 만족한 삶을 살다가는 사람은 단 한사람도 없다.
인간의 뇌구조 DNA는 맺고 끊는 시점이나 지점이 없고 시작과 끝이 없는 ‘만족’에 대한 도전만 있을 뿐이다.
도전이란 약육강식을 토대로 살아가는 인간사에 있어 절대로 필요한 의식이자 용기와도 같지만 끝이 없는 도전은 인간을 황폐와 고통의 도가니로 몰아가게 만든다.
그 결과를 뻔히 짐작 하면서도 인간은 자신에게 한정 돼 있는 시간을 오직 도전이란 두 글자에 매달려 살아간다.
‘만족’을 향한 도전의 끝자락은 불만족의 비극을 초래함에도 인간은 그 길로 간다. 그 길로 가는 것은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모두가 그 길로 가기 때문에 따라가는 것 뿐이다.
차고 넘치게 사치스런 삶을 사는 사람도 언제나 불만이 가득하고 보면 이를 충족시킬 방법은 없거나 방법이 잘못된 것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릇 그릇마다 분량이 다르고 용도도 다르듯이 사람 사람마다 천차만별이다.
각자 충족하는 방법이 다름을 깨닫고 주어진 여건을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자기만족을 채우는 데는 어렵지 않을 것 같다.
‘못 오를 나무는 쳐다보지 말라’했다. 이 말은 현실도피나 한계를 지적하는 것 같이 들릴 수도 있어 반감을 사기도 하지만 이 말을 바꿔 ‘못오를 나무’가 아니라 내가 ‘오를 나무’가 아니다로 인식 한다면 자신이 도전할 나무를 찾게 되지 않을까 싶다.
인간은 누구나 만족 속에 산다. 다만 이를 부인하는 것은 만족치 않다고 여기는 내 판단, 내 생각, 내 마음 때문이다.
‘넘치면 모자람만 못하다’ 했다.
결국 만족이란 적당함, 보통 정도 일때 이미 충족돼 있음이다.
과일이 햇볕을 받아 익어갈 때 설익어도 맛이 덜하지만 농익어도 상품가치도 맛도 떨어진다.
농사에 필요한 것은 햇볕과 물 등 자연조건이 맞아야 풍요로운 결실을 기대한다.
건기나 우기가 계속 되거나 기온의 높낮이가 제 균형을 잡아주지 못하면 한 해 농사는 망치게 된다.
가장 적당한 온도, 습도, 햇볕 등이 곡식에게도 만족한 결과를 가져오듯이 우리의 삶도 이와 전혀 다를 바 없다.
잘해보려고 시작할 때의 초심의 목표가 완성되면 더 잘해보려고 사업을 확장하면서 제2, 제3의 목표를 설정하게 되는데 항상 성공할 수는 없는 법이다.
한해 농사가 대풍인 것은 내가 농사를 기술적으로 잘 지었다기 보다는 99% 자연의 뒷받침이 있었기에 가능 했다는 사실이다.
한껏 욕심 부려보고 싶은 인간의 욕망, 그 욕망의 늪에 한번 빠지면 헤어 나올 길이 없다. 물고기가 강물 속에 많다고 물속에 뛰어들어 고기를 건져 낼 순 없다. 물속까지 뛰어들어 자기 목숨을 담보하며 얻게 될 만족은 무엇일까 결국 사망이다.
나는 간혹 내가 불행하다 여길때 너무 고통의 터널이 길게 이어질때 언젠가부터 이노래를 불렀다.
가수 윤향기가 부른 ‘나는 행복합니다’라는 노래다.
이 노래 속에 ‘행복합니다’라는 가사는 20번이나 들어있다.
이 노래를 한번 부르고 두 번 부르고 또 부르다보면 불행했던 마음이 어느순간 행복한 마음으로 돌아가 내가 살아있다는 사실하나만으로도 감사해 눈물이 난다.
아! 마음 하나 바꿨는데 노래하나 불렀는데, 행, 불행이 이처럼 뒤바뀌고 무거웠던 마음의 짐을 내려놓게 되는구나.
내마음을 불행하다고 생각하며 온갖 원망을 다하며 분노와 좌절로 치닫던 내마음이 노랫가락하나에 행복해지고 그 행복이 두려운 마음까지 삼켜버리는 것을 느꼈다.
그이후부터 불행, 절망, 좌절 부정적사고, 분노감이 치밀어 오를때 이를 참고 극복해 보려고 나자신을 무던히도 학대했던 내자신에게서 벗어나 지금도 노래를 부른다. 불행하다는 마음이 들 때는 ‘행복하다’는 마음으로 반격을 하면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결국 나를 끌고 가는 내마음은 ‘두마음’이 분명하다는 사실이고 대부분은 극복하는 방법을 몰라 슬픔을 슬픔으로 달래고 술로 달래고 세상을 원망하는 마음으로 치닫다보면 삶이 우울함으로 가득차 버리고 누구에게든 발길질을 하지 않으면 안되는 순간까지 치닫게 된다.
묻지마 폭행이 이에서 기인하는 듯 싶다.
이세상에는 인간의 욕망을 채울수 있는 것은 결코없다.
인간의 욕망이 눈에 보이는 상자나 그릇같으면 얼마든지 무엇으로든지 채울수 있겠지만 인간의 욕망은 마음속에 감춰져 있어 물질로는 채우지지 않는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마음이 ‘두마음’이기에 서로 다툴수 있다는 것이다.
마음은 물질로 채우는게 아니라 마음을 바꾸는 것이다.
흔히 ‘마음을 바꿔먹어라’라고 한다.
이말의 궁극적 목적은 채우려는 마음(욕망)을 버리는 것이다.
버리면, 비우면, 그공간에는 욕망으로 얻어지는 번민의 열매가 사라지고 그속에 자유로운 영혼의 自我(자아)가 비로서 나와 첫 대면을 하게 된다.
이제 먹고사는 일에 ‘사생결단’을 하지말고 마음을 바꾸는데 ‘사생결단’을 하면 우리의 삶은 참자유를 만끽하게 된다. 이를 믿으면 현실이 된다.


유 의 호 <편집국장>
(유 의 호 <편집국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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