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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18 12:16
 

데스크칼럼 Deskcolumn
 

[시론] 김영란法과 언론 (2016-09-21)
펜이 강하다고 총칼(권력집단)에 비유해선 ‘民主’없다

김영란법이 추구하는 목적은 공직자 부정부패를 막기 위한 청탁금지에 있다.
청탁을 한다는 것은 어렵거나 안 되는 것을 되게 하는 것이기에 부탁하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이 뒷거래를 하게 된다는 전제가 있다. 따라서 ‘청탁은 하지도 말고 받지도 말자’는 기본원칙에 충실해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청탁의 기준을 문화적수준이 아닌 법률적 잣대로 정해놓았는데 그 잣대가 3·5·10 이라는 돈의 상한선이라는 점이다.
이 돈은 밥값, 선물값, 경조사비 인데 과연 이 가이드라인이 얼마나 청탁금지의 근본취지를 살려 나갈지는 의문이다.
성경에 "약대는 통째로 삼키고 하루살이는 걸러내는도다"라고 말한다.
지금까지 법망이 촘촘치 못하거나 허술해 범죄자들을 처벌하지 못한 게 아니다. 법이 법대로 시행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법상법, 옥상옥의 김영란법이 과연 기존 형법을 능가해 세상이 갑자기 청렴해 질 것인지 또한 ‘공수처’를 신설해 얼마나 그동안 못 잡아들였던 고위급인사들을 처단할지는 누구도 장담 못한다.
다만 하루살이 걸러내듯 ‘3.5.10’ 숫자놀음에 잔챙이만 걸려들지 않을까 우려된다.
이를 두고 ‘용두사미’라 한다.
천둥번개가 요란하다고 온종일 비를 뿌리는 법은 없으니 4년여동안 만지작거렸던 김영란법이 요란했던 만큼 그 결과가 기대만큼 도래될런지, 반하여 우려와 염려속에서 애꿎은 농민들만 큰 피해를 입게 될런지 좀 더 지켜볼 일이다.
정부와 정치권은 일단 9월 28일부터 실행해보고 문제가 있으면 고쳐보자는 식이다.
애당초 입법이 되고 법 시행을 하려면 충분한 고민과 국민들과 합의하에 법을 완성 시켜야 한다.
‘일단 시행’이란 말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이 대목에서 한 가지 확실하게 논쟁해야 할 중대 사안이 있다.
필자는 언론인의 한 사람으로 이번 김영란법 자체에 비판을 하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사실관계는 분명히 하는 게 언론의 주권을 바로 세우는 것이라 본다.
언론의 기능은 김영란법을 포함한 입법, 사법 행정을 총망라한 비판이다. 비판이 목적이고 생명이다. 때로는 편법을 통해서라도 공익적 가치 실현을 위해 이를 실천함에 주저하지 않는다. 실정법으로는 문제가 되지만 그 목적이 공공의 이익 추구면 그 죄(?)를 묻지 않는다.
물론 언론도 민형사상의 책임을 벗어날 수 없기에 경우에 따라서는 필화사건 등으로 단죄를 받기도 한다. 그러나 언론은 그것을 두려워하거나 마다치 않고 사회정의 실현과 국민들의 알 권리 충족을 위해 위정자들이나 힘 있는 자들과 맞서 싸운다.
그들에게 총칼(권력)이 있지만 언론에는 총칼로 제어 안 되는 펜이 있다.
지금 김영란법으로 인해 펜이 무뎌지거나 큰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다만 왜 언론을 김영란법에 포함시켰는가 하는 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김영란법은 ‘부정청탁방지법’이다.
이런 사실을 토대로 한다면 언론은 펜이 아닌 총칼을 가진 권력층으로 보고 있다는 것이고 부정 청탁의 중심 역할의 한 축으로 판단하고 있다는 결론이다.
그렇다. 그 말이 모두 틀린 말은 아니다. 부정한 권력을 꺾는 것이 펜이고 보면 어느 전직 대통령 말처럼 ‘나보다 더 큰 권력을 가진 언론 때문에…못해먹겠다’라 했듯이 작금의 위정자들이 펜을 권력으로 보고 언론을 권력기관으로 치부하면서 언론을 ‘김영란법’에 집어넣었다라고 밖에 볼 수 없다.
물론 언론이 제 역할을 못하고 언론인이 아닌 사람들이 기자 행세를 하는 등 언론의 병폐적 요인도 상상이상 일 수 있다.
그러나 보다 명확한 것은 언론은 민주주의나 공산주의를 막론하고 절대 필요한 존재이고 국가가 존재하는 한 언론의 몫은 모든 순위의 우선임을 인정해야 한다.
이런 언론의 역할에도 불구하고 국영언론을 제외하고는 국가에서 지원하는 언론사가 없다는 것이다.
국가를 홍보하고 국가를 통해 수익을 창출하고 국가가 지배구조의 우위를 점하고 있는 국영언론은 그 종사자들이 상당 수준의 대우를 받고 일한다.
따라서 공직자 수준의 제재를 가한다해도 국영언론의 제 기능을 발휘 하는 데는 문제가 되지 않을 듯 싶다.
그러나 일반 언론은 정확히 말하면 사기업 이다.
이익을 스스로 창출해야 하고 이를 토대로 분배해야 한다.
더구나 조·중·동과 같은 대기업 수준의 언론기관을 빼고는 열악성. 영세성은 대부분 마찬가지다.
시행을 앞두고 있는 김영란법이 농축수산업을 하는 국민들에게 타격이 불가피하듯 중소언론, 지방언론 등의 활동이 위축될 것은 불문가지다.
본래 김영란법이 추구하려던 근본목적 취지와는 사뭇 다른 곁가지 치기에 그치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예전처럼 중소언론을 두려움의 대상으로 삼던 시대는 지났다. 개중에는 숙달되지 못한 기자들이 좌충우돌하는 경우는 있지만 거의 눈에 띄지 않을 정도다.
이런류의 언론인들은 얼마든지 현 실정법으로도 솎아 낼 수 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김영란법은 마치 언론을 타깃으로 만들어진 법으로 충분히 오인될 소지가 다분하다.
강자를 꺾고 약자의 편에서 일하다보면 강자와의 다툼은 다반사이고 약자의 지지대 역할을 위해 일(취재)하다 보면 부정청탁으로 내 몰릴 수 있다.
‘이현령비현령’이라 했다.
전쟁터에서 총을 쏠 때는 은폐 엄폐도 필요하고 때론 앉아서, 서서, 엎드려쏴가 필요할 때가 있다. 교범대로 교칙대로 움직일 때는 훈련 기간에나 가능한 일이다.
3·5·10 이란 숫자가 일명 보이는 덫이라 볼 때 과연 이 덫에 미련스럽게 걸려 넘어질 자가 있을까?
공직자는 이미 오래전부터 3·5·10 준칙 이상의 준법을 지켜오고 있다. 그 덫으로 고통 받는 이들은 농민이고 공무원도 아닌데 김영란법으로 공무원 취급받는 이들이다.
아무리 주는 것 없이 밉다고 헌법에 보장된 언론의 언로를 차단해 일반 공무원화 시키겠다는 것은 시대착오적이자 시대역행임을 지적치 않을 수 없다.
국회의원의 의정활동의 민원을 위한 것이기에 제재를 하지 않고 민원을 위한 언론의 제사명은 ‘경우에 따라 처벌 할 수 있다’를 전제로 하는가?
아직도 대한민국 권력집단은 언론을 목탁, 등불, 소금역할로 인정하는 게 아니라 적으로 돌리고 있으니 가히 진정한 민주주의 꽃이 이 땅에 언제쯤 피려나 싶다.
권력자들의 의식이 언론을 권력으로 치부하는 한 이 땅에 민주주의는 분명 없음이 ‘분명’하다. 김영란법이 이를 반증하고 있다.


유 의 호 <편집국장>



(유 의 호 <편집국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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