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도 예산안이 법정 시한을 22일이나 넘겨 겨우 국회 문턱을 통과했다. 2014년 국회선진화법이 시행된 이후 ‘최장 지각 처리’라는 불명예스러운 기록을 세우고 가까스로 처리된 것이다. 그러나 이 예산안을 살펴보면 힘깨나 쓰는 실세 정치인들은 자기 몫을 어김없이 챙겼다. 예산을 챙기기에는 여야도 없었다.
긴축 재정을 입으로 외치면서도 여당에서는 정진석 비상대책위원장, 성일종 정책위의장, 권성동, 장제원 의원 등은 자신들의 지역구 예산을 더 늘리거나 없던 예산도 신설하며 반영했다. 야당도 마찬가지다. 우원식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장, 위성곤 원내정책수석부대표도 지역구 예산을 더 증액하거나 신설하면서 두둑하게 확보했다. 이들 의원은 예산안 협상에서 막후 조율을 맡아 원안에 없던 예산을 늘리거나 신규로 따내기도 한 것이다.
이번에 통과된 내년도 예산안을 살펴보면 최초 정부 예산안에서 4조2000억 원이 감액되고 3조9000억 원이 증액되었다. 그런데 이 증액분에 지역 민원성 예산이 상당 부분 포함된 것으로 파악되었다. 쟁점에 치열하게 대립한 여야 의원들은 자신들의 지역구 예산 확보에는 모두 한통속이 되었다. 한정된 예산을 효율적으로 배분하여 국가의 미래 발전을 도모해야 할 의원들이 아전인수(我田引水)로 자기 논에만 물을 댄 것이다.
이번 예산안 통과는 사상 유례가 없을 만큼 법정 처리시한을 넘기는 것은 물론 정기국회 종료, 국회의장이 제시한 시한 등을 넘기면서 치열하게 대립했다. 대립의 명분은 ‘서민과 약자를 위한 예산’, ‘미래세대를 위한 미생 예산’을 내세웠다. 하지만 이런 주장과 명분은 모두 무색했다. 실세 의원들은 은밀하게 자신의 지역구에 필요한 예산 확보를 위한 거래를 하고 있었다. 이들이 과연 국가의 미래와 국민을 위한 의원이라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실세들의 예산 확보를 위한 담합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민원성 쪽지 예산과 ‘깜깜이’ 담판을 통해 여야는 선심성 예산을 주고받았다. 이렇게 편성된 예산은 기본설계나 사업비에 대한 예측조차 제대로 되지 않아 회수되고 마는 예산도 적지 않다고 하니 국가자원의 왜곡된 배분과 국민 혈세의 낭비가 안타깝기만 하다.
이렇게 예산을 확보한 의원들은 지역구에 예산을 확보했다는 홍보 자료를 배포하기에 바쁘고, 정당들도 앞다투어 예산 폭탄을 쏟아부었다는 식의 선전에 열을 올린다. 이들이 국회의원인지 시군구의원인지 구분이 안 될 지경이다. 정부 예산을 자신들의 지역구에서 표를 얻기 위한 도구로 생각하는 의원들을 볼 때 국민은 울화통이 터진다. 이러니 지역구 예산 챙기려 쇼를 한다는 세간의 비난이 쏟아져도 할 말이 없다.
이제 이렇게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아야 한다. 깜깜이 쪽지 예산을 통해 확보된 예산에 대한 기록을 남겨 이를 공개해야 한다. 당리당략에 사로잡혀 정쟁에 몰두하다가 시간이 없다며 밀실에서 야합하는 정치인들의 모습에 유권자들은 환멸을 느낄 뿐이다. 국회 예산 심사 기간을 충분히 늘리고 투명하게 국민의 혈세가 처리될 수 있는 제도적 보완이 필요한 때다. <저작권자 ⓒ 시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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