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망하며 살면 남는 것은 원망뿐!
나의 이모습 이대로가 가장 아름다움이다.
근심 걱정 없이 살아가는 사람은 없다.
먹고 숨 쉬는 것 조차 버거운 것이 삶이기 때문이다.
모두에게 물어보자 사는 게 어떠하냐고
누구나의 답은 이마아래 미간에 내천(川)에서 엿보게 된다.
이맛살에 그려진 내천의 고랑의 깊이에 따라 고단함을 가늠할 수가 있다.
그냥 순순히 얻어지는 것이 없는 세상이기에 근심걱정이 떠나지 않는다.
더 얻으려면 그 만큼 애를 써야하지만 애쓰는 만큼 얻는다는 보장도 없다.
그러다 보니 신세한탄을 늘어놓고 원망을 한다.
그 대상은 나와 이해관계인부터 전혀 무관한 불특정 다수인까지 포함된다.
보이지 않는 신도 그 대상이다.
결국 내게 얻어진 것은 원망뿐인 결과지를 손에 쥐게 마련이다.
하지만 내가 원망했던 그 당사자가 ‘나 아닌 또 다른 나’였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고 나면 삶이 참으로 정떨어진다.
돌고 도는 물레방아가 자기 스스로 돌아가진 않는다.
내가 살아 꿈틀 대는 것 같지만 나를 꿈틀대게 하는 또 다른 나에 의해 반사신경이 나타나는 것뿐이다.
인간의 번뇌는 자신의 욕구나 집착을 현실화 하려할 때 마음의 갈등이 일어나는데 그것이 번뇌다.
따라서 번뇌는 욕심에서 기인하거나 집착에 의한 것이기에 이를 제거 또는 제어하면 아무 일도 생기지 않는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라는 말의 함축된 의미가 무엇일까 무념, 무상, 무심으로 돌아가라는 뜻이다. 찾으려하지 말고 붙잡으려도 말고 올라서려도 말고 갖으려도 말라는 것이다.
이미 찾았고 보았고 갖었는데 인간은 이에 대한 믿음이 없다. 그러니 물레방아 인생이고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제자리를 돌고 도는 게 인생이다.
산을 산으로 보면 되고 물은 물로 보면 된다. 여기에 내가 산이 되고 물이 되겠다고 덤벼본들 첩첩산중이요 망망대해를 어찌 상대할 것인가.
무심으로 돌아가 보면 내가 산이고 내가 물인 것을 산과 물은 번뇌로 가둬놓고 이를 정복하려는지 그 정복이 내가 나를 정복하려고 하는 것인지를 깨닫는다면 지금 입은 옷 먹는 음식 잠자는 곳이 감사할 따름이다.
이제 덧없는 것을 잡으려 말고 자신을 성찰해 참 삶의 평안함을 누렸으면 싶다.
이 말은 내가 나에게 간곡한 마음으로 부탁하는 것이다.
뻔한 길, 아는 길, 멸망의 길을 걷고 걸으며 남들 간 길을 뒤따르는 것 이것이 내가 바라던 삶은 아니지 않는가.
멀리 볼 것도 좌우를 돌아볼 것도 없이 그저 지금의 나에게 삶의 전부가 지금이라고 말해준다면 먼 훗날의 막연한 행운을 바라고 살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
지금 내가 배고프고 슬프고 처절함에 갇혀 사는 것은 목표를 지금이 아닌 미래에 두었기 때문이다.
슬퍼할 수 있고 배고픔을 느끼고 때론 한탄스럽기도 하지만 이것이 행복이다.
내가 존재하기에 살아 있기에 숨을 쉬기에 가능한 것들이 아닌가.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남과 비교하지 말고 범사에 감사하라.
감사가 감사할 때만 감사하다면 우리의 삶 중에 감사한 것들이 얼마나 존재할까 싶다.
감사의 반하는 말은 원망이다. 어떤 이를 원망하든 그 원망은 결국 나를 원망하는 것이고 결국 나를 피폐하게 만든다.
이 모습 이대로가 가장 아름다움이다.
치장하여 아름다움을 가장 하는 것은 자신의 삶을 연극화하는 것일 뿐이다.
나는 소중하고 본래 아름답고 본래 악하고 본래 이렇게 생겨 먹었음을 인정하면 나를 돈으로 꾸미고 권력으로 꾸미지 않아도 연극 같은 삶이 아닌 나의 삶을 구가하지 않을까!
나의 적은 ‘나 아닌 나’이기에 나의 생각이나 나의 판단을 믿지 말고 나의 잣대가 기준이 되어 남을 상하게 말라. 그 잣대가 부메랑인 것을…
유의호 <편집국장 | 2022/01/23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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