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몰아 세우려면 연륜(年輪)이 쌓여야 한다.
하나 하나의 경험을 바탕으로 숙련된 경지에 다다른 상태를 연륜이라 한다. 나이가 먹다보면 나무의 나이테처럼 인간에게도 주름살이 나이테를 가늠케되고 주름의 깊이로 인간의 연륜을 느끼게 된다. 이 연륜은 각각의 삶의 방향과 살아온 과정과 환경에 따라 다르게 형성된다. 그러나 일정한 연륜에 다다르면 대부분은 한곳을 바라보게 된다. 생각도 결과도 결국은 하나로 귀결된다. 경험이 녹아있는 연륜이기에 뭇사람들의 길잡이되는 한편 자기 주장에는 점점 인색하게 된다. 일생을 살면서 수많은 부딪힘속에서 깨달은 것은 과연 무엇일까? 그것은 한마디로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것이고 재론하면 ‘허황된 꿈’이라는 단막극에 불과했음을 인식하게 마련이다. 이를 인식할 즈음이면 인생은 반비례 현상이 나타난다. 이때부터 인간은 자신을 몰아세운다. 지금까지는 내가 단막극의 주인공으로 살면서 온갖 사치스러움을 위해 살았지만 이젠 그 주인공에서 그 무대에서 스스로 내려서게 된다. 그리고 하나의 관객이 된다. 나이테는 늘어나는데 비해 사치스러움의 옷은 훌훌 털어버리게 된다. 눈에 보이는 것을 가치로 환산하고 앉은자리로 높이를 재고 나이 또한 한때는 벼슬이었지만 내리막길 앞에서는 브레이크도 소용없다. 내가 가진게 소중하다고 여기고 품고 있는 한 다른 것을 품을 수는 없다. ‘내가 잘나 일생’인 사람은 주변에 사람이 없고 나밖에 없어 내가 무너지고 넘어져도 나를 일으켜줄자가 없음은 불문가지다. 이제 연륜만큼 용서도 하고 이해도 하고 있고 없음을 떠나 포용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심고 뿌린대로 거둔다 했다. 어디에다 어떻게 뿌렸는지는 열매로 알 수 있다. 작금의 내 삶이 피폐해져 있다면 혹은 행복감이 든다면 그 각각의 결과물은 곧 내가 뿌린 대가일뿐이다. 따라서 누굴 원망해서도 또는 행운이라고 여겨서도 안되며 내 삶을 누구와도 비교하지 말아야 한다. 이미 지나간 것들에 대해 자신을 탓한들 무슨 소용이겠는가. 지금 내가 남보다 못함보다는 남보다 괜찮은 것들이 얼마나 많은가 생각해보라. 억만장자도 병석에 누워 죽은자처럼 사는 이도 있고 최고의 권력을 구사하던 이들도 탄핵에 구속에 기막힌 처지이고 보면 가히 나는 얼마나 자유로운 영혼인가 말이다. 오늘의 삶은 어제의 결실이고 내일은 오늘의 결실이기에 지금에 감사하고 살다보면 남부러울게 없다는 안위감이 찾아든다. 내생각 내욕심을 따라다니지 말고 나를 내려놓고 내가 세상과 사람을 판단했던 내 기준점을 지워버린다면 나뿐 아니라 주위 모두를 평화롭게 하리라 믿는다. 연륜이란 모든 경험이 쌓인 창고와 같다. 그동안 자신을 위해 쌓아왔던 연륜의 창고를 열어 그곳에 갇혀 살아왔던 나를 해방시켜줘야 한다. 사냥하던 독수리도 일정한 연륜이되면 반드시 풀어주어 자연으로 돌려 보내듯이 하물며 인간이 스스로 그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채 평생을 사냥만하다 가려하는가. 고등동물의 미련함이던가 누구나 똑같이 살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인가. 그 누구나를 우리 인간들은 자고새며 본다. 답은 누구나 불공평한 것 같지만 공평하다고 여기고 살 때 비로서 세상이 공평해진다. 인간은 세상이 불평등하다고 여기기 때문에 불평을 일상화하며 살아간다. 그런 시각에서 벗어나는 순간 불평 끝, 만족 시작이다.
유의호 <편집국장 | 2018/10/04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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