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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조직의 ‘끝판왕’ 남승기 총경의 족적 “추종불허”

유의호 편집국장 | 기사입력 2022/09/28 [16:07]

경찰 조직의 ‘끝판왕’ 남승기 총경의 족적 “추종불허”

유의호 편집국장 | 입력 : 2022/09/28 [16:07]

 유의호 편집국장

서울 경찰청 광역 수사대장, 서울 경찰청 마약수사대장의 실체 “활약상 ↑↑”

인천 지리적 여건 치안수요 전국 최고 수준 버금 “치안감 → 치안정감 격상 절실”

 

●‘귀신 잡는 해병대’ 있다면 ‘귀신도 무서워하는 광역수사대’정평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대형사건

경찰의 자존심 최후의 보루는 

●경찰은 국가기관 검찰과 상하관계 아니다

사법부의 3권 분립 필수

●경찰 = 수사권·검찰 = 기소권·법원 = 판결권

 

대한민국 최강의 수사대 ‘광역수사대’. 그 중에서도 서울 광역 수사대는 경찰 조직의 ‘끝판왕’이다. 대한민국 경찰의 심장이다. 나아가 경찰의 자존심이자 명예다. 무술 3단 이상의 유단자로 구성된 초강력 수사대로서 약 150여명의 정예요원으로 구성돼있다.

한마디로 경찰의 최종 수사처로 보면 맞다.

적어도 이곳 요원이 되려면 강력반 3년차 이상이 돼야 하고 수사대장이 된다는 것은 경찰 간부로서 갖춰야 할 3박자에 조금도 손색이 없어야 한다.

중대사건, 특수사건 등 세상을 떠들썩 할 만한 사건은 ‘광역수사대’가 모두 맡아 처리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곳 서울 광역수사대장을 태동과 더불어 2년 동안 역임한 인물이 있다. 바로 그 입지전적의 경찰이 퇴임을 목전에 둔 현 인천 계양경찰서장 남승기 총경이다.

그는 자타가 인정하는 기획력, 수사력, 경험을 필두로 선뜻 자리를 내줘도 지휘하기 어렵다는 그 자리에서 경찰의 전성기를 보냈다.

다부진 체격에 오직 경험과 탁월한 판단력으로 추종을 불허하리만큼 수많은 수사성과를 거뒀다. 

하루가 멀다 하고 중앙 일간지에 대서특필 되는가 하면 공중파 3사 방송의 메인 뉴스로 자리매김했다.

한마디로 대한민국 사건사고의 빅뉴스는 그의 손에서 생산되고 해결됐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영남대 공대를 졸업하고 최우수 실력으로 경사로 특채돼 81년도 경위로 임관됐다.

그는 충북 영동 10대 오지마을에서 태어나 어린시절을 보내던 중 어느 날 느닷없이 산림담당 경찰이 마을에 나타나 집집마다 벌목해 화목으로 사용하는 장작을 찾느라 마구잡이로 조사하는 모습을 보았다.

이때 그의 가슴과 노리에 자신의 운명을 결정짓는 울분과 제복에 대한 동경이 동시에 그려졌다. 

“‘정의’를 앞세워 인권을 유린한하다면 민주 경찰이 아니다”라는 부정적 시각과 ‘제복의 힘이 저토록 강하다면 나도 경찰이 되어 국민을 위해 그 힘을 쏟겠다’라는 마음이 가슴에 각인됐다.

이 후 그는 뜻한 바와 달리 영남대가 자랑하는 공대에 우수한 실력으로 합격, 졸업했으나 좀 더 큰 꿈을 실현키 위해 한때 고시공부에 매달렸다가 ROTC중위 출신으로 경찰 특채 시험을 통해 경찰에 입문했다.

정말 그는 어릴적 꿈인 제복을 입었고 제복에 가장 잘 어울리는 경찰관이 되었다.

천하무적의 맹장으로 수사지휘권을 갖고 범죄와의 전쟁에서 승승장구했다. 그의 경력이 증명하듯 그는 앞서 기술했듯이 서울 광역 수사 대장을 역임했고 마약수사 대장을 역임했다. 

그가 가는 곳마다 선명한 족적이 서려있다. 일일이 성과를 기록하기엔 지면이 한계를 느낄 정도다.

본래 그는 2대 독자로 태어났기에 군대를 면제받아야 했지만 그는 자진에 ROTC에 지원했다. 이때도 장교의 제복이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투스타 박정희 소장을 연상했고 나폴레옹의 기백 넘치는 제복을 동경했다.

첫 제복을 입은 그는 28세에 서울의 한 파출소에 최연소 소장으로 부임했다.

그의 인생 항로에는 최연소, 최고, 최대라는 수식어가 수없이 뒤따랐다.

이런 엄청난 실적을 거양키 위해서는 짬이 있을 수 없었다.

쪽잠을 자야 할 만큼 그의 영광 뒤에 숨겨진 비화는 얼마나 많을까 싶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경험 경륜을 토대로 논문을 통해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살아있는 생생한 그리고 현장감있는 경험이 밑바탕이 된 논문이기에 예사 논문과는 비교우위를 선점한다.

공학도다운 면모와 현장에서 체감한 경찰 행정을 점목시킨 “법집행력 확보가 치안역량 향상에 미치는 영향”이란 제하의 -수도권 현장 경찰관 법률지원 제도에 관한 인식을 중심으로- 라는 부제로 논문을 발표했다.

그는 경찰관에 입문 후 “경찰관이 진정한 경찰관이 되려면 그리고 제 사명을 다하려면 법을 집행하는 경찰관에게 ‘뒷심’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때로는 목숨을 걸고 치안이라는 미명하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경찰관이지만 적어도 국민에게 담보된 목숨값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그 가치를 인정하고 보상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남 서장!

이제는 박봉경찰이라는 말이 옛말이라 하겠지만 수십대 1의 경쟁력을 뚫고 어엿한 경찰관으로 재탄생된 그들에겐 대가보다는 희생이 크다는 사실이다. 꼭 집는다면 ‘아직도 박봉이다’라는 말이다.

이런 희생을 바로잡고 경찰관의 본문을 제대로 행사해야 치안역량이 향상된다는 의미가 부여된 논문속에는 ‘민중의 지팡이’‘민주주의 경찰’이라는 수식어 아래 주취자에게 경찰이 폭행을 당하기도 하고 자칫 이를 제지하다보면 공권력 남용이라는 말을 듣게 되는게 현실이다. 따라서 이들 경찰에게 법률 지원을 통해 사기를 진작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그는 2004년도 검찰의 전유물처럼 여겨왔던 마약수사를 경찰청에서 직접 진두지휘하는 마약수사대 대장을 맡기도 했다.

첩보전과도 같은 정보망을 통해 밀수·밀매 조직을 소탕해야 했기에 뛰어난 기획력이 절대적이었다. 마약수사대가 태동하면서 곧바로 수사대장을 맡게된 것은 그의 능력이 탁월했음을 뒷받침 한것이 아닐 수 없다.

남서장은 마약수사대장을 1년 6~7개월동안 맡아 마약범죄 조직을 발본색원하는데 무수한 공을 세웠다. 이때 당시 33인의 요원들 중 11명이 특진이 됐으니 그 성과는 짐작이가고도 남는다. 

뒤이어 서두에서 밝혔듯이 서울 경찰청 광역수사대장으로 2006년부터 2년여간 독보적인 존재로 활약했다. ‘귀신잡는 해병대’가 있다면 ‘ 귀신도 두려워하는 광역수사대’가 존재케한 주인공이다.

그는 광역수사대 요원들을 “광인(狂人) 수사관”으로 명명했고 그런 수사관들만이 살아남음을 확실히 보여줬다.

‘나는 미친 수사관이다’ 광역수사대 게시판 벽보에 캐치프레이즈를 새겨놓고 자긍심을 일깨웠다.

섬뜩하기 조차한 광역수사대, 그곳의 수장이 바로 남승기 대장이었다.

이후 그는 2009년도 총경으로 승진됐다.

진천서장을 시작으로 2010년 1월부터 현재까지 인천일선서장으로 진면목을 과시하고 있다.

남서장은 인천청 수사과장을 두 번씩이나 역임할만큼 강력 수사통이다. 그러나 그에게도 시련은 있었다.

그는 인맥도 학연도 없었기에 뒷서거니 앞서거니 밀고 당겨주는 절친도 없었다. ‘참 고독했었다’라고 회고했다.

34년여 경찰 제복을 입고 제복에 걸맞는 행동에 한치의 어긋남이 없었다.

그는 말끝마다 제복을 강조했다. 제복입은 그 제복이 너무 멋져 결국 경찰제복을 입었던 남승기!

그가 이제 퇴임을 준비하고 있다.

남겨지는 후배 경찰관들에게 경험에서 터득한 한수를 남긴다.

첫째, ‘경찰관은 달라야 한다’ 식구가 많다보면 실수도 있겠지…. 경찰관은 실수가 통하지 않는다. -기본기에 충실하라-

둘째, ‘전문기술을 갖춰라’ 위급상황에서 일반인들과 똑같은 행동요령을 해서는 안된다. 판단력과 함께 즉시 구조에 돌입할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

셋째, ‘조화를 이루지 못하면 나가라’

조직생활을 통한 조화력(친화력)으로 혼일이 아닌 합일을 이뤄야 하고

넷째, 업무든 임무든 즐길줄 알아야 한다.

부정과 긍정은 같은 사물을 보면서도 전혀 다른 결과를 초래한다.

다섯째, ‘성숙하라’ 타인을 향한 배려를 우선하라. 비로서 경찰이 왜 ‘서비스맨’ 인지를 알게 되고 ‘봉사’가 본연의 경찰임무임을 깨닫게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항상 외치는 말이 있다.

‘나는 나를 사랑한다’ ‘나는 나를 죽도록 사랑한다’ 이뜻을 새기자면 ‘나를 사랑할줄 모르면 남을 사랑하지 못한다’라는 ‘自他一如’ 정신을 바탕에 깔고 있다.

그는 경찰 인사와 조직 그리고 수사권독립문제에 대해서도 한마디 덧붙였다.

경찰인사는 누구나 최선을 다하면 기회가 주어진다는 사실을 믿게끔 해야한다.

역설하자면 “희망이 없는 곳에 열정이 없다”라면 계급사회에서 승진만큼 중요한게 없기 때문에 현장을 중요시해야 하고 시험도 병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수사시스템에 대해선 절도.폭력.강력이 우선으로 통하는 형사기능 보다는 지능.경제.사이버적 범죄가 난무한 상황에선 전문지식을 필요로 하는 수사기능을 대폭지원 보강해야 한다.

또한 수사권 독립에 대해서는 언젠가는 수사권은 경찰, 기소권은 검찰 판결권은 법원이 맡아야 한다.

이를 가리켜 그는 사법부의 3권분립이라 정의했다.

“경찰은 검찰과 대등한 관계이지 상하관계나 ‘의사와 간호원’ 사이가 아니다”라고 꼬집었다.

국가가 인정한 독립개체인 국가기관이 바로 경찰인데 선진국과는 달리 국가기관이 상하조직처럼 여겨지는 것은 3권분립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라고 성토했다.

다만 경찰이 제업무를 충실히 이행하다보면 언젠가는 수사권이 제자리를 찾아올것이란 강신명 청장의 말을 인용했다.

퇴임에 즈음한 만큼 그는 가슴에 얹힌 이야기를 꺼내놓았다.

인천남부서장시절 한달남짓만에 인천청 보안과장으로 자리를 옮겼던 것.

일부의경들이 조폭서장으로 매도하면서 꿈도 펼쳐보지 못한채 뒷걸음질 쳤던 것이 34년의 경찰생활에 불명예가 됐다.

결코 변명하고 싶지 않다고 했. 다만 나는 진정으로 내자식같은 꿈많은 의경들을 무척이나 사랑했었다는 그 말을 남기고 싶다는 말을 전했다.

또한 이런 사건이 있은 후 나를 믿고 내 마음을 알뜰히 챙겨주고 언덕이 되어준 아내에게 고맙다는 말을 건넸다.

다만 이를 경계삼아 남을 탓하기 전 열정만을 갖고 내가 자만하지 않았나 스스로 채찍을 통해 큰깨달음으로 나를 낮추는 계기가 됐으니 이또한 감사하다고 말했다.

그에게 아직 다하지 못한 일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누누히 강조하지만 경찰의 중요고객은 첫째 범죄 피해자 둘째 피의자이다.

이들을 위해 ‘범죄 피해자 지원국’을 하루속히 신설하고 별도예산을 마련해야 된다“고 소신을 피력했다.

‘경찰은 강도 잡았다고 표창받고 승진하면서 정작 범죄로부터 피해를 본 피해자는 아무런 보상이없다’ 이것이 그가 주장하는 지원국 신설의 이유다.

끝으로 그는 인천치안의 일선 수장으로서 반드시 꼭 정부에 건의해서 관철돼야 하는 현안에 대해 말했다.

‘인천은 지리적 여건으로 볼때 인천공항·인천항등 공항항만을 이용한 입출국 인원이 많다보니 치안수요가 전국최고 수준이고 아시안게임을 유치 행사를 치룰만큼 성장된 도시인만큼 그위상과 치안부담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인천경찰청의 조직을 강화시켜야 함과 동시 청장의 계급도 치안감에서 치안정감으로 격상해야 한다“라며 국익과 인천시민을 위한 충정심을 드러냈다.

한편 계양경찰서에서 경찰직을 마감하게 돼 감사하고 행복하다고 전하고 이제 남은 생애는 새로운 타이어로 갈아끼우고 제2의 경찰관으로 제2의 인생을 출발하겠다고 다짐했다.

-계양서 전직원 여러분 무한한 감사와 사랑을 보냅니다.-

 

유의호 <편집국장 | 2014/10/07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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