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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사(孤獨死)

유의호 편집국장 | 기사입력 2022/09/28 [16:04]

고독사(孤獨死)

유의호 편집국장 | 입력 : 2022/09/28 [16:04]

 유의호 편집국장

‘가난은 나라도 구제치 못한다’는 변명은 통치력 부재탓

 

홀로 사는 사람들이 질병이나 위급함을 감당치 못해 죽는 것을 ‘고독사’라 일컫는다.

조그마한 도움의 손길만 닿았어도 사망에 이르지 않았을 것을 혼자였기에 누구하나 들여다보는 이가 없었기에 그렇게 세상을 떠날 수 밖에 없는 ‘고독사’.

이런 고독함에 놓인 이들이 지금 우리 주변에는 부지기수이고 나 자신 또한 고독사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사실 앞에 직면해있다.

방치된 채 수십 여일이 지나 발견되기도 하고 성실히 살던 세 모녀가 동반자살로 생을 마감하기도 한다.

이 모두가 너무도 고독했기에 세상을 등진 경우다. 조금만 주변을 둘러보고 살았어도 내 이웃이 이처럼 살다 가진 않았을 텐데 라는 생각이 든다. 미안함에 마음도 무거워진다.

배려와 관심이면 이들의 ‘고독사’는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참 세상이 삭막하다. 삭막하다기 보다 무척이나 외롭다.

수많은 인간들이 함께 어우렁 더우렁 살아가는 것 같지만 언제든지 나만을 위해 살아가고 있다. 어울려도 진정한 어울림이 없다. 사람(人)인자가 홀로 설 수 없어 서로 받침대가 되어 살아가 간다고 했지만 그것은 아닌가 보다.

필요에 의해 만나고 헤어짐이 너무나 사무적이고 보니 그 틈새에 인정이 깃들 틈이 없다.

아니 사람 생각이 너무 빠르게 흘러 이끼가 낄 수가 없음과도 같다.

‘친구’란 친할 親에 옛 舊라 쓴다.

하지만 작금의 세태는 오래 사귐이 없고 오래되면 쉰내가 나고 더하여 악취가 난다.

서로에게 유익함이 아니고 서로에게서 영양분을 받아내다가 그것이 다하면 서로를 헐뜯고 돌아선다. 둘이 합하여 하나가 되는 법을 배운적이 없기에 언제나 홀로 살아가기에 급급하다.

이를 원망하기에는 나 자신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우리가 자식을 가르칠 때 그렇게 하라고 했기 때문이다. ‘최고가 되라’고 ‘최고야 되어야 한다’고 그러려면 ‘남을 이겨야 한다’라고 가르쳤다.

그 아이들이 자라나서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원동력이 되었기에 그 이상의 몫은 그들이 경험해서 깨우치는 수밖에 없다.

지금 우리 주변에 고독사가 눈에 띄게 나타는 것은 우리의 산물이다. 어쩔 수 없는 우리의 몫이다.

그리고 그런 사회적 분위기와 환경적 요인은 이제 국가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사실에 직면해 있다.

인정에 대고 호소할 땐 지났다.

다시 한번 천지가 개벽하기 전에는 이 땅에 인정의 샘물은 꿈도 꾸지 못할 일이다.

보다 분명한 사실은 지금쯤 50~60대 초반의 삶을 살아가는 이들이 갈 곳도 설 곳도 없다는 게 현실이다. 이들을 소위 ‘베이비부머’ 세대라 부른다.

이들 대부분은 농촌에서 태어나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낸 이들이고 이들의 재산은 80%가 부동산이고 금융자산은 전무한 실정이다. 베이비부머 세대는 현재 715만명에 달한다. 이중 400만은 저소득층으로 불안한 노후가 코앞에 닥쳐있다. 앞으로 몇 년 안에 사회적 문제로 대두될 게 분명하다. 

더구나 연금 외에는 기댈 때가 없고 보면 이나마도 준비 못한 이들은 어떻게 될까. 아마도 정부에서 주는 노인연금에 풀칠하다 대부분 ‘고독사’로 처리되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부동산이래 봤자 달랑 집한채가 전부다.

이나마 자식들이 이리저리 빼가고 나면 길거리로 나앉게 마련이다.

고령화 시대이고 보면 향후 20~30년은 더 살아야 하는데 누구의 보살핌을 받아야 하느냐 말이다.

그들의 자식들은 설문조사에서 상당수가 ‘모실수 없다’고 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부모님 모시고 효도하면서 흙에 살리라”라는 노래는 옛 노래요, 그냥 유행가일 뿐이다.

이 베이비부머 세대가 가고나면 차세대는 국가에서 노후를 책임질 만한 능력을 갖는다. 지금부터 20~30년이 가장 큰 문제이다.

‘방치 고려장' 시대가 도래되고 있다.

이미 베이비무머 세대 직전의 부모 세대가 ‘고독사’에 노출되어 살아가는 현실이다.

베이비부머 세대는 어중간한 입장이다. 부모를 모시자니 자식들의 앞길이 걱정이고 자식만에 최선을 다하자니 부모가 운다.

그것보다 더 걱정은 자신이다.

이 틈새를 국가가 노인 복지라는 차원에서 매꿔줘야 한다. 노인연금 10만원 20만원이 목숨 줄 같은 노인들이 이 땅에 부지기수이다. 고령화 세대로 접어들면서 노인들의 삶은 더욱 비참해졌다.

이들에게 생명 연장줄은 오직 국가의 손에 달려있다. 그들을 가리켜 전쟁시대이자 새마을 주역시대 한강의 기적에 초석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그렇다.

하지만 이들은 일생을 자식히나 잘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소팔고 논팔아 자식들 거둔 죄 밖에 없다. 그 바탕위에 그 자식들이 바톤을 이어받아 작금의 이시대의 주역이 되었다.

그러나 50년대 중반이후 60년대 초반에 태어난 이들은 상당수가 그 부모세대의 삶을 이어받아 부모와 자식이라는 틈새에 끼이게 됐다. 이를 ‘베이비부머’라 부른다.

바로 이들 까지를 포함해야 6.25 전쟁 전후 세대의 종지부를 찍게되는 셈이다.

대한민국이 이들 때문에 국민소득 2만불 3만불 시대를 구가하고 있지만 정작 이들은 이제 설 자리가 없어졌다.

이미 퇴물이 됐거나 퇴직을 하고 하는 중이다.

이들에게 노후준비는 자식농사 뿐이었다. 이것이 그들의 고백이다. 국가는 더 이상 대안이 없다고 한다. 대안이 없다면 남은 것은 풍요 속에 빈곤자가 되어 춥고 외롭게 살다 ‘고독사’의 길로 갈 수밖에 없다. 조금만 곁을 줘도 곁불로 겨울을 내고 밥 한술씩만 보태도 끼니를 연장할 수 있다. 가진자의 1% 상위층이 대한민국 50%를 손에 넣고 가진자의 10%가 대한민국의 90%를 가졌다한다.

국가가 국민의 생명이 고독사로 마감되는 것을 좌시하는 것은 통치력의 부채에서 비롯됨이다.

‘가난은 나라도 구제치 못한다’는 말은 국민소득이 절대 부족일때나 하는 말이다.

 

유의호 <편집국장 | 2014/07/23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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