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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칼럼]끌려가는 삶을 끌고가는 삶으로

유의호 편집국장 | 기사입력 2022/09/28 [15:55]

[새해칼럼]끌려가는 삶을 끌고가는 삶으로

유의호 편집국장 | 입력 : 2022/09/28 [15:55]

 유의호 편집국장

나를 끌고가는 너는 누구냐?

 

‘희노애락’

이 네단어가 인간을 웃고 울리고 기쁘고 노엽게 한다. 인간의 감정을 잘 조합한 표현이고 이감정의 기복속에서 인간은 ‘잘살고 못살았다’‘과거가 그 랬고 현재가 이렇다’고 평가한다.

지난한해 우리삶은 갖가지 사연으로 요동을 쳤고 올한해 또한 어떤 일들로 격랑의 파도가 칠지 기대와 두려움이 한꺼번에 밀려온다.

그러나 인생은 한상 즐겁지만 않고 반하여 슬프기만 하지 않는다 기쁘다가도 노엽기도하고 다투기도하고 화해하기도 한다.

다만 이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면 행복지수가 높게 나타나고 부정적요소를 오래도록 품고있으면 삶이 피곤하게 마련이다.

누구나 똑같다. 요행이란 없다 앞서 말했듯이 어떤일을 어떤 감정으로 처리하느냐에 따라 결과와 관계없이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간다는 것이다.

기왕에 정해진 수명에 따라 살다 가는 것인데 하루를 살다갈지라도 얽매이지 않고 산다면 그 수명도 내게 길거나 짧은 것만은 아니며 단지 숫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인간이 살면서 불행하다는 생각을 떨치지 못하는 데는 크게 두 가지 때문이다. 하나는 채울 수 없는 깨진 그릇에 물을 채우려는 어리석음이고 또 하나는 ‘불행하다’는 생각을 떨쳐버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바꾸어 생각하면 불행심리 때문에 행복이 앉을 만한 빈공간이 없다.

병든자가 환자로서 죽음을 맞이할 것인지 병마와 관계없이 내의지대로 살다 생을 마감할지는 병에 얽매이느냐 그 사로잡힘에서 벗어나느냐에 달려있다. 인간은 나약하고 어리석다 만일 나약한 육체를 가졌기에 설령 내 몸이 병들었다 쳐도 어리석지 않다면 마음마저 육체의 병과 함께 고통을 받지 않을 것이다. 

육신과 생각을 분리대응 할 힘이 없는 것은 우리가 육신의 배만 불리기 위해 최선을 다해 살고있기 때문이고 따라서 육신이 고통받고 힘들면 마음도 육신에 붙들려 함께 신음한다.

육신은 껍데기에 불과하다. 육신은 나이에 따라 노화되고 기능을 상실하면 그 연한을 다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마음은 육신과 함께 동행 하지만 전혀 다른 세계와 꿈을 갖고 있다. 마음이 육체의 지배를 받으면 육체의 현상에 따라 동시에 죽음을 맞이 할 수 있다.

하지만 마음이 육체를 지배하면 육체의 현상은 마음따라 어떤 고통에서도 해방이 된다. 본래 마음은 어떤 상황하에서도 매어사는 존재가 아니기에 똑같은 조건하에서도 결과를 달리 가져올 수 있다. 우리의 삶이 피폐한 것은 육신의 고통보다 마음이 편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마음의 건강을 위해 노력한 적이 없기에 마음이 육신에 노예가 되어 자유를 잃었다. 바로 ‘소탐대실’이다.

마음은 인간의 본체요 육신은 나뭇잎에 불과하다 육신의 결국은 ‘낙엽귀근’이다. 마음도 양식이 필요하다. 육체가 배고프듯 마음이 아파오고 어찌할 바를 모른다. 그렇지만 마음이 견고한 자는 태풍이 지나가도 요동이 없다. 비바람 한설에도 뿌리로 버틴다. 즉 마음은 뿌리다 뿌리가 굵고 깊이 뻗으면 나뭇가지가 부러져 나가도 그 시기를 벗으면 다시 잎을 내고 꽃과 향 그리고 열매를 선사한다.

바람에 흔들리는 잎새하나 꽃잎하나에 목숨거는 근시적 사고에서 벗어나 비록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뿌리의 힘을 그 원천을 기억하라 ‘만고풍상’이 두려울 게 어디있겠는가. 모든 것 그것은 지나가기 위해 오는 것이다. 두러워마라 병도 가난도 슬픔도 분노함도 억울함도 그 일이 있은 후에 내 몸집도 뿌리도 견고한 법이다.

올 한해 어떤일들이 나의 뿌리를 흔들어 더 깊은 뿌리를 내리게 할까 기대해보자.

또한 육신에 끌려다니는 마음을 육신을 끌고 다니는 마음으로 바꿔놓자.

새삼 엄청난 변화를 실감케 될 것이며 이를 의심치 않아도 된다.

 

유의호 <편집국장 | 2014/01/06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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