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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갈논 서마지기 인생

유의호 편집국장 | 기사입력 2022/09/28 [15:52]

자갈논 서마지기 인생

유의호 편집국장 | 입력 : 2022/09/28 [15:52]

 유의호 편집국장

무엇따라 흘려들었는가. 

이 모진 세파에….

혼자 양심 지킨다고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니것만 왜 이토록 우직하게 그길에서 멈췄는가.

“호의호식”하는 자도 죽도록 피땀흘려 한되박 양식에 목을 매는자도 자갈논 서마지기 인생일뿐.

배부름에 끝이 없고 배고픔에 끝도 없는 그런 황량한 벌판이 지금 우리가 살고있는 그런 세상이고 보면 마음마저 시려 온다. 이런 세상을 살아가야하는 이들이 다름 아닌 우리인데 어찌 춥고 배고프지 않으랴. 이른 새벽 별을 보고 들녘에 나가 밤별을 보고 돌아올 동안 땀흘리며 용트림해도 자갈논 서마지기의 지갯짐은 가볍기만 하다.

그래도 숨을 쉬고 살아야하기에 아니 삶의 목표이기에 그것에 목을 매고 사는게 아닌가 싶다.

딱히 신은 우리에세 더도 덜도 아닌 딱 그만큼, 누구에게나 똑같이 자갈논 서마지기씩을 분배해 주었으니…그렇게 믿으면 틀림없다.

“큰부자는 하늘이 낸다” 는 말이 있지만 이것도 헛말이다.

신은 공평하기에 그렇지 않음을 난 믿는다.

그러나 분명 신은 인간에게 자갈논 서마지기라는 달런트의 사명을 던져주진 않았을 것이다.

다만 인간이 그것을 운명으로 받아들임으로써 억조창생이 동일한 생을 살다 감이다

먹고,입고,자는 것 이것이 생의 전부이고 보면 동물적 본능과 무슨 차이가 있는가

고등동물로 태어나 동물적 본능의 한계에 갖혀 그속에서 치열한 경쟁을 하며 늙고 병들어 가면서도 그 한계를 벗어나지도 벗어날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

그것을 스스로 '주어진 삶이다' 이름 짓고 '누군들 별 수 있냐'며 반문하고 자위하며 살아간다.

그러니 인생들은 1등을 해도 만족치 못하니 꼴찌와 다를바 없는 삶이다.

많아서 걱정, 적어도 걱정, 있어도 없어도, 걱정뿐이니 이것이 바로 자갈논 서마지기의 고달픔이다.

안다고 뽀족한 수가 생기지도 않는다. 도를 닦는다고 설령 도인이 되어도 그 마음은 공허함이다.

나를 만족시키지 못하면 불행이다. 그러나 자갈논 서마지기로는 죽었다 깨어나도 만족할 수 없으니 삶이 고단 할 뿐이다. 먹는 것으로 만족할 수 없음은 마음이 배고프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마음을 만족시켜야 비로소 육체의 배고픔이 멎음이다.

마음은 물질로써 채워지지 않기에 육체가 먹고 살아가야할 양식으로는 결코 마음의 공허함을 매꾸지 못하는 법이다.

최선을 다해도 죽도록 피땀 흘려도 만족없는 삶을 살다 갈게 아니라 그동안 애써 외면해왔던 마음을 살핀다면 고통과 슬픔에서 차츰 벗어나지 않을까.

그러려면 가던길을 멈춰라 멈추면 보임이다.

산이 산으로 보이고 강이 강으로 보인다. 자신이 보고 싶은 대로만 봐왔던 모든 사물이 자연그대로 보인다. 멈춤은 무얼 말하는가.

무얼까! 가던 길을 멈추라 함은….

성경 속에 한말을 인용하면 예수가 한 사람을 향하여 “네가 나를 따라오려 한다면 네 처자와 부모형제 그리고 전토를 모두 버려라”했다.

이것이 멈춤이다.

그러나 버리라는 의미가 속세를 떠나 모든 인연을 끊으라는 것은 아니다.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것에 충실하라는 것이기에 내가 걸어왔던 삶의 방향 즉 관점을 옮기라는 것이며 옮겨야 관념도 달라진다는 뜻이다. 그렇지 않고 지금까지 왔던길을 그대로 간다면 그 끝은 허망함이며 그것을 뻔히 보고 알고 가는 인생길은 고달픔을 넘어 매일매일 죽음이며 지옥일 뿐이다.

먹고 마시며 하루해를 떠밀어 넘기지 말고 천년이 하루같은 만족 속에 하루를 살아감을 터득하라.

불만의 끝은 죽음이다. 

불만은 욕심을 만족시키지 못해 치밀어 오르는 “화”와 같기에 욕심을 향해 가던 길을 멈추면 만족의 길을 만나게 된다.

 

유의호 <편집국장 | 2013/10/18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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