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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아름다운 삶!

유의호 편집국장 | 기사입력 2022/09/27 [16:28]

[사고]아름다운 삶!

유의호 편집국장 | 입력 : 2022/09/27 [16:28]

 유의호 편집국장

듣기만해도 향기가 느껴진다.

아름다움은 남녀의 구분이 없고 모든 사물에 적용된다.

‘예쁘다’, ‘착하다’라는 일상의 말들 속에는 무엇인가 부족한 느낌을 주고 때론 그 소리가 폄하하는 소리로도 들린다. 그러나 ‘아름답다’는 말은 어떤 평가나 기준을 넘어서 존경심이 우러나게 된다.

'예쁘다‘는 말은 시간이 흐를수록 변질되게 마련이고 어느 시점에 가서는 싫증을 느끼게 마련이다.

인형이 아무리 예뻐도 오래간직하며 끼고 놀지 않는다.

사물에는 특성이 있고 그 특성은 변질되지 않는 것이 또한 특성이다.

아름다움도 하나의 특성과 같다. 그 아름다움은 은은함이 배어 있어 시기심이나 질투를 유발하지 않기에 모두가 흠모하게 된다.

아름다움은 누구라는 특정인에게만 아름다움을 선사하지 않고 모두에게 똑같은 모습으로 다가온다.

화려함이 없지만 화사하고 만나면 동화되는 그것이 아름다움이다.

아름다움의 극치를 논하자치면 “아름다운 삶”이 아닌가 싶다.

삶은, 살아가는 모양새다.

산다는 것은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기에 아름답기보다는 늘 일그러진 모습이다. 바쁘고, 허둥대고 울고불고 마치 아수라장을 연상케됨은 누구도 예외일 수는 없다. 참으로 아름답지 않다. 철철 피흘림이 이보다 더 할까 싶기도 하다.

나 외에는 곁눈질 할 틈도 없이 “我田引水”식 경쟁논리에 길들여져 참으로 삶이 추하게 보여진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추함과 아름다움의 기준을 상실한채 살아가면서 그 자리를 소유욕으로 메꿔놓고 있다.

그리고 소유한자는 소유물로 아름다움을 나타내려 애를쓴다. 나누기도 하고 자신을 잔뜩 포장하기도 한다. 부끄러운 모습 부족한 측면을 화장으로 가리듯 치장을 하고 호의호식으로 과시한다.

그것은 아름다움과 거리가 멀다.

아름다움은 자연스러움이다. 줘도 표시내지 않고 울어도 소리내지 않으며 상대를 동정하기전 희생을 택한다.

바라지 않으며, 소망함이 있다면 모두가 잘 되길 기도하는 것.

그것이 아름다움이다.

비록 줄 수 없어 건내지는 못해도 진정한 친구가 되어주고 그의 아픔에 동참해주는것, 나보다는 남을 배려하기를 주저치 않는 그런 삶!

빼앗으려 용을 쓰고 일어서려고 남을 밟고 내눈에 보이는 모두가 경계의 대상이고 적으로 보이거나 이용할 물건으로 보이는 그런 삶을 추구함이 대다수인의 일상이고 보면 아름다운 삶을 구가하는 이들은 진정 이땅의 빛이요, 소금이 아닐 수 없다.

꾸미고 가꾸지 않아도 자연은 자연스러운 들풀과 들꽃들을 생산해 산천초목을 향기와 아름다움으로 덮는다. 그 들풀과 들꽃들은 한없이 예쁘고 한없이 아름다우며 은은한 향은 천리를 발걸음 한다.

하물며 인간이 아름다운 삶을 지향한다면 이 땅은 에덴이며 지상의 낙원이 되고도 남음이 있지 않겠는가?

그러나 현실은 평생 가난에서 허덕이고 어떤이는 평생 배불리 먹고 마시는 빈익빈 부익부 사회가 어찌 진정한 민주주의 사회란 말인가?

아름다운 사회는 공동의 가치와 번영이 구호로만 그치는 정치적 쇼에서 진일보해 더불어 함께 사는 길을 열어주는 것이며 이를 위해 공동의 가치관이 우리 사회의 주체가 돼야한다.

그 주체는 동물의 세계에서 터득한 ‘약육강식’의 법칙을 민주주의의 경쟁원리로 덥석 끌어안는 방식으로는 끝없는 반목과 갈등만을 생산할 뿐이다.

아름다움의 주체는 보이는 사물이 보이지 않는 것에 의해 탄생됐음을 인식할 때 비로서 뿌리를 내림이다.

지금 이 순간 이글을 대면하면서 나자신에게서 풍기는 냄새를 맡아보라.

느끼지 못한다면 그 코마저도 썩었음이다. 악취가 난다면 그나마 아름다움을 꽃피울 여지가 남아있음이니 각성하여 선을 토해내자.

 

유의호 <편집국장 | 2007/10/15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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