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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성교육 뒷전의 末路는 황폐

유의호 편집국장 | 기사입력 2022/09/27 [11:29]

인성교육 뒷전의 末路는 황폐

유의호 편집국장 | 입력 : 2022/09/27 [11:29]

 유의호 편집국장

“학교 현장에는 OX밖에 존재치 않는다”

 

공부는 자아발견의 사고력을 키우는데 필요한 힘이다

 

청소년은 나라의보배이자 희망이기에 국가의 미래를 이들을 보며 점쳐 나간다해도 과언은 아니다.

따라서 교육을 국가의 100년대계라 한다.

하지만 작금의 청소년들은 청운의 꿈을 접은채 하나같이 공부벌레로 내몰리고 치열한 경쟁논리속에서 대학 진학만을 위해 하루 24시간이 모자라는 지친 삶을 살아가고 있다.

이건은 고통이자 멍에다.

공부라는 굴레가 씌워진채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짜여진 시간표에 의해 하루 이틀도 아닌 무려 약20여년을 족쇄찬 청소년기로 살아가야 하는 처지다.

자율이나 자유가 보장돼 있지 않은 학창시절로 인해 이미 청소년은 청소년기를 국가와 사회적 여건에 의해 강탈 당하고 부모는 이를 충족시키기 위해 인생을 허비하고 무한한 투자를 해야한다.

인간이 무엇을 배워야하고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교육의 지표로 삼아야함이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위정자들에 의해 막연한 틀에 갖혀 가치관이 배제된채 숫자적 놀음에 빠져버렸다.

이들에게 돌파구란 없다.

급류에 휩쓸려 내려가듯 몸을 맡긴채 발버둥칠뿐이며 만일 이대열에서 낙오하면 마땅한 대안을 찾기란 결코 쉽지않다.

그만큼 국가는 청소년들에게 일정한 틀 다시말해 유일무이한 학교교육에 전적으로 떠맡겨놓고 이기간을 제1의 제련 과정으로 삼고 금, 은, 동(?)을 가려내는데 전부로 삼고있다.

그러나 제2의 인생 결과는 제1의 제련 과정의 지배적 영향을 받는다고는 하나 그렇다고 절대적인것이 아님을 우리는 똑똑히 알고있다.

비근한예로 학교 1등이 사회1등이 아니라는 점이다.

따라서 청소년기에 접어든 학생들의 인격은 당연히 소중하며 대우를 받아야 하기에 빗나간 현 교육의 현장에 마냥 맡겨놓고 지켜만 본다는 것은 참으로 무책임하다 할것이다.

재능이 다르고 환경이 다른 아이들의 개성을 무시한채 오로지 일렬종대로 세워 상급학교 진학만을 주 목표로 삼고 실업계통의 청소년들에 대해서는 이미 낙오자처럼 바라보는 사회적시각은 화이트칼라 실업자만을 양성하는 꼴이다.

능력과 실력과 개성에 따라 대우를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춰 그들이 미래를 향해 날개짓을 할 수 있도록 국가가 정책적으로 자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다양한 학교 프로그램과 다양한 종류의 대학을 설립, 자기 취향에 맞는 대학을 선택하도록 유도하고 졸업과 동시 취업이 보장되고 인정받는 평준화 교육에 촛점을 맞춰야 한다.

졸업장만을 손에 움켜쥐기 위해 학생이나 부모가 20여년 세월을 보장도 없이 목을 매고 매달리는 그런교육은 진정한 교육의 가치를 상실한 것이며 이미 상실된 교육을 "그래도...."라는 경쟁심리 때문에 "왜?" 라는 반문도 못한채 학교로 학원으로 내몰리는 청소년들의 현실에선 국가의 미래를 결코 보장 받을 수 없다.

학교는 공부, 공부는 왜? 라는 물음앞에서 허구한 경쟁심리만을 유발시킨채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일률적 인재 양성(?)에 열을 올리고 이에 선택의 여지가 없는 학생들은 오직 성적순에 의해 극단의 삶을 지향하고 있다.

학교는 공부를 가르치고 주입하는 곳이 아니라 왜? 공부를 해야 하는가라는 물음에 확신을 얻고 자기적성을 키워나갈수 있도록 교육당국은 이를 학생에 따라 조절하고 조명해 줘야 할 책임과 사명감을 가져야 한다.

따라서 지금이라도 교육의 목적을 새로 설정하고 공부로부터 노예화된 학생들을 해방시켜 자기꿈을 실현할 수 있는 장소가 곧 학교가 되도록 해 줘야 한다.

 

유의호 <편집국장 | 2006/08/02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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