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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지 못하면 나비가 아니다

유의호 편집국장 | 기사입력 2022/09/27 [11:27]

날지 못하면 나비가 아니다

유의호 편집국장 | 입력 : 2022/09/27 [11:27]

 유의호 편집국장

기자없는 신문은 신문지에 불과

 

6.29선언이후 허문도 체제가 무너져 내리면서 우후죽순 이땅에 신문지만 늘어났다.

봐도 볼게 없고 색감도 없고 이른바 복사판이다.

최소한 양심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필자 또한 본지의 중책을 맡고 있지만 우리 신문도 결코 예외는 아니다.

마치 엎드려 침뱉는다 하겠지만 사실 이점을 간과하고서는 결코 작금의 지방지를 신문이라 말하기엔 부끄러움 그 자체다.

일명 보도자료 모음집이자 억지춘향의 글짓기가 대다수를 이루며 이렇다할 볼거리 읽을거리를 제공치 못하고 있다.

물론 보도자료의 중요성을 터부시 하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보도자료를 접수한 기자라면 비중에 따라 보도여부를 결정하고 기자의 몫인 취재후 기사작성이 이뤄져야 함은 기자의 ABC이다.

지방지 기자와 중앙지 기자의 차이점이라면 지방지의 경우 대부분 추천에 의해 임명을 받고 중앙지의 경우는 시험을 치고 수습을 거쳐 기자가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방지기자는 기자 발령후 기자가 되기 위해 전력을 투구해야 함이 당연지사다.

노력하지 않는다면 기자증을 10년 20년 차고다녀도 그는 기자가 되지 못한다.

지방기자가 기사를 처음부터 작성한다는 것은 만의 하나일뿐 쓸줄 모르는게 당연하고 쓸줄 모른다면 정말 기자가 되려고 한다면 타인에게 조롱을 당하지 않으려면 공무원들이 던져주는 보도자료 그대로의 하단에 부끄러운 자신의 이름을 기명치 않으려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쓰고 또 쓰는 연습을 게을리해선 안된다.

기자가 제 기사를 작성 자신의 이름 석자가 지면을 작성할때 그 보람은 쓰는 자 외에는 알길이 없다.

이후 참 기자는 공사를 정확히 구분해 사사로운 감정에 결코 치우치지 말아야 한다. 이로써 기사내용이추측이나 사익성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다.

이때 비로서 기자의 눈이 생기게 되고 기자의 초점이 뚜렷해진다.

사회부기자로써 육하원칙만을 중시해 작성되던 기사의 폭도 점차 넓어져 세상을 보게되며 사회성의 중심에서 시사성을 논할만큼 시각이 넓어지는 전문기자가 되게 된다.

이같은 상황 전개는 차치하고서라도 첫째 기자는 기자가 되려고 최선을 다해 노력해야 되며 둘째 지방신문사도 최소한의 향후 기자의 자질을 우선해 추천 선발해야 한다.

이는 기본 원칙이다.

이를 준수하지 않으면 사이비언론 사이비기자의 굴레를 평생 벗어나지 못한다.

이러다보니 용은 못되고 이무기가 되어 삼삼오오 짝을 짓고 엉터리기사를 작성하고 협박해 공존공생(?)의 길로가며 문제시 법망에 걸려드는 다반사의 현실을 벗어나지 못하게 된다.

마치 약사나 의사를 채용하거나 변호사를 채용하고 운영하는 사장이 따로 있는 것처럼 한사무실에 여러기자들이 합동사무실을 차려놓고 진정한 정보교환과 사회정의를 구현하지 않고 제2의 탐정사무실이나 일반 보도방처럼 음성적인 행각을 도모한다면 이는 사회 독버섯이다.

기자는 적어도 공인이다. 기자란 모름지기 기자가 될때 무관의 제왕으로 대접을 받는 것이며 그렇지 못할때 가장 수치스럽고 수모스러운 사이비기자 소리를 듣게 되는 것이다.

실제로 신문사에서 기자로 발령한 기자가 비리를 행했다면 비리 기자로 불러야 함에도 왜 사이비기자라 하는가?!

이는 그가 기자가 아니며 기자로 인정받을 만한 자격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며 이를 지방언론이 대변치 못하는 것도 기자를 기자로서 대접치 않고 있기 때문에 방어능력이 없다는 점이다.

그러나 무엇이 사이비행각인지 조차를 제대로 숙지 못하고 있는 기자나 언론이 게중에 있고보면 ‘사이비기자도 종류가 있구나’라는 생각마져 든다.

지금은 지방화시대다.

지방기자는 지방화시대 부응의 첨병역할을 해야 하는 중요한 위치에 있다.

따라서 지역발전에 조력하고 객관성을 확보한 공익적 비판을 통해 존경과 신뢰를 쌓나가야 할 때다.

 

유의호 <편집국장 | 2006/06/12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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