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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타의 공인을 받는자가 되라

유의호 편집국장 | 기사입력 2022/09/26 [16:34]

자타의 공인을 받는자가 되라

유의호 편집국장 | 입력 : 2022/09/26 [16:34]

 유의호 편집국장

자신은 격에 맞는말을 한다고 말을 하지만 어떤식의 격도 벽을 허무는데는 아무 소용이 없다.

격이란 자기의 위치에 맞춰입은 옷같아 형식에 억매일때가 많고 상대를 매우 불편하게 하는 법이다.

반드시 필요할때 외에는 격식을 갖추지 않는것이 인간적이고 자신에게도 유익하다.

격이 바로 벽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비로서 자타의 공인을 받는 인물이 된다.

강조해도 틀리지 않는 말이 있다면 범인들은 대중적인 사람을 좋아하며 권위가 있으되 권위로 사람을 다스리지 않는 인물을 인물로 꼽는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가정이나 사회에서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스스럼없는 사람과의 만남을 매우 즐거워하며 그시간을 기억한다.

지금 우리사회가 각박해 지고 정감이 없어 메마르고 있는것도 상대를 적으로 대하기 때문인데 이를 그냥 치부하고 살아간다.

자기 기분에따라 지위에따라 화풀이 대상을 찾고 상대의고통을 즐긴다. 이는 죄악이다.

우린 흔히 "사람위에 사람없고 사람아래 사람없다"라는 표현을 한다.

하지만 현실은 분명히 사람들을 중심으로 하지 않고 상류층 고위층 또는 중.서민층으로 구분해 사람을 아래로 보거나 위로 보는 세상이다.

이는 인권이 층에 따라 그 대우가 다르다는 의미로서 사람대접을 받으려면 무엇인가는 소유해야 됨을 확인시켜주는 대목이다.

되짚어 말하면 상대로부터 능멸을 당하지 않으려면 또는 사람답게 살아가려면 무조건 경쟁에서 이겨 무엇이든 쟁취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세상은 공평하지 못해 경쟁에서 이기려면 악의가 있어야 하고 권모술수와 같은 추악함이 곁들여져야 하고 운도 따라줘야 하기에 평범한 인격을 가진자들은 뒤처지게 마련이다.

따라서 불공평속에서 공평을 유지하는 사회를 창출하려면 경쟁에서 승리한자들이 승리케해준 패배자들에게 감사 할 줄아는 정신이 필요하다.

세상의 이치는 웃는자가 있어 우는자가 있고 우는자 때문에 내가 웃는자가 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인간은 승리의 도취감에 빠져 말타면 비행기 타고 싶다고 모두를 하수인처럼 여기니 우리사회가 암운이 깃들 수 밖에 없다.

"자타의 공인"이란 나보다는 내주위와 타인을 배려하고 웃줄하는 거만한 자세를 버릴때 비로서 인정받는것이다.

자아도취속에 군림하는것은 자기성취감에서 오는것으로 그 수명이 길지 않고 주객이 전도되는 날에는 이웃으로 부터 크게 버림 받게 된다.

우리는 살면서 속담처럼 열두번 변하게 마련으로 주종과 상하관계의 카티고리에서 삶을 영위하려 한다면 결국은 후회의 점철이 명약관화한 사실이 되고 만다.

이를 벗어난 삶을 구가하려면 존재의 의미와 그가치를 자발적으로 고취시켜나가야 한다.

불교계는 참삶은 '自他一如'라 하고 기독교계는 "네이웃을 네몸처럼 아끼라"라고 제시하고 있다.

포괄적 의미로서 '사랑'을 나누라는 것인데 합하여 하나라는 뜻이다.

한형제, 한핏줄 나아가 인류는 한조상아래서 시작된 공동운명체임을 강조하는 것이다.

이를 실현하려면 독창 보다는 합창을 통해 하모니를 이뤄야 하는데 온통세상이 독창의 무대가 되고 있으니 창해일소와 같은 존재로 살다갈 뿐이다.

배고파 우는자에게 젖을 주기는 커녕 그쪽박 마져 깨버리고 박대하는이들이 태반이고 보면 한번쯤 너나없이 기아와 장애자가 돼 인생을 바르게 사는법과 범사에 감사하는 법을 배워야 되지 않을까 싶다.

인정을 받으려면 상대의 처지를 동정내지 푸대접을 할게 아니라 사람을 사람으로 인정하라

그리고 지위와 권력을 가졌다고 춥고 배고픈자 앞에서 까불지마라.

벼는 익을수록 자신을 지탱해주고 있는 땅과 뿌리에 감사해 고개를 숙이듯 어깨 기브스를 풀어 자세를 낮춰라 그것이 道德이다.

 

유의호 <편집국장 | 2005/09/12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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