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上典자식 孝子없다”
사랑은 내리사랑이며 효는 올려바치는것임을 모르는 이는 없다. 사랑은 부모가 자신에게 베푸는 무한함이며 조건없는 무조건이다. 설령 조건을 따져 사랑을 주는 부모라도 실상은 자식에게 이해관계가 설정되지 않았기에 무조건이라 말할 수 있다. 효는 그무조건에 대한 조건이다. 따라서 의무와 책임이 수반된다. 사막가운데 모래 한알갱이와 같고 아홉 마리소에 털하나(九牛一毛)와 같은 억조창생중 하나라도 반드시 주인이 있고 모태가 있기에 내가 존재하고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이를 주지한다면 자식은 부모에 대해 반드시 孝로서 보답을 해야 한다. 역설컨대 孝는 가정과 사회 나아가 국가의 안녕대계의 근간이며 이를 실천치 않으면 미래 없는 세계가 당대뿐아니라 후대까지 이어진다는 사실이다. 孝에 대한 인식자체가 뿌리채 뽑혀버린듯하고 이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교육이나 기관이 전무한 실정이고 설령 있다쳐도 고고성만 울려대고 있으니 효가 현실과는 크게 동떨어져가고 있음이다. 孝는 문화가 아닌 생활이다. 百見이 不如一行이라 했다. 듣고 보고 하면서 실행하지 않는 전당포신세가 돼버린 효문화사상, 이 孝가 전당포에서 가정이나 교육의 대명사로 복귀되지 않는한 세상은 항차 삭막일색이 돼버릴것이다. 문제는 가정이 핵가족화되면서 3대가 한가족을 이루지 않기 때문이다. 부모자식지간을 1촌간으로 여기면서 부모된자가 자신의 부모에 대해 등한이 하고있으니 그의 자식이 항차 자신을 어떻게 대우 할 것인지는 이미 해답이 나와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말로만 가정의달이자 어버이날을 정하고 인색한 꽃한송이와 용돈으로 효를 다하자고 한다면 家族관계는 대대손손이 아니라 당대밖에 없는 현실에 처하게 될것이다. 그 같은 현상은 작금의 우리사회에서 나타나는 ‘목불인견’이 이를 반증하고 있다. 자식이 받는것만을 알았지 주는 것을 모르는 극단적이기주의자가 돼 모든 것을 다주고 소진한 70대이상 부모들이 자식들에게 짐이되어 버림당하는 세태가 돼버렸다. 물론 고령화사회가 진행된데다 경제사정의 악화로 노부모를 모시기 힘든세상이라고 치부할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효의 근본인 뿌리를 잊었기 때문이다. 이보다 훨씬 어려웠던 당시에도 이처럼 현대판 고려장은 일찌기 찾아보기 힘들었음이 이를 입증하고 있다. 5월 가정에달을 맞아 한번쯤 고개를 뒤로 돌려보자. 내새끼만을 상전으로 받들지말고 진짜 상전이 내 부모임을 자식들에게 가르쳐 먼훗날 새끼상전에게 필요없는 헌신짝 취급을 받아 황혼의 눈물을 머금지 말자 이것은 “자업자득”이다. 자식에게 하나만 분명히 가르치자. 아버지 어머니 함자를 한자로 가르치기 이전에 할머니·할아버지 함자부터 익히고 쓰게하라. 이것이 바로 3대를 잇는 孝의 기초가 됨을 유념하면서 말이다.
유의호 <편집국장 | 2005/05/09 게재> <저작권자 ⓒ 시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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