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일보=이상엽 에디터] 2년 만에 이사를 했다. 열흘에 걸쳐 소형 SUV 차량을 이용해 왕복 40km 거리를 하루에 한 번, 어떨 때는 두어 번을 실어 날랐건만 이사 당일 반 포장 이사로 계약한 이삿짐센터 2명의 직원은 놓여있는 짐을 보고는 한숨만 푹푹 내쉬며 차량 1대와 1명의 일꾼이 더 필요하다고 하소연했다. 조금이라도 빨리 이삿짐을 옮기는 게 낫다고 생각해 도리없이 제안(이라고 쓰고 압박이라고 읽는다)을 받아들였다. 결국 3명의 일꾼들과 1톤 차량 3대가 동원됐다.
당초 1시간 정도면 출발하리라는 내 예상과는 달리 3명의 일꾼이 4시간 정도가 지나서야 이삿짐 싸기와 싣기가 가까스로 마무리됐다. 시간이 지날수록 일꾼들의 이마에서는 땀방울이, 입에서는 한숨이 새어 나왔다.
“아니, 혼자 살면서 짐이 왜 이렇게 많아요?” “이 짐이 다 들어가기는 할까요?” “이사하시면 정리가 많이 필요하겠네요”...
내 돈 주고 이삿짐센터를 이용해 반 포장 이사를 하는데 짐 많다고 많은 핀잔을 듣다 보니 죄인이라도 된 듯 한없이 부끄럽고 미안해졌다. 그들의 한숨과 푸념이 계속되다 보니 왠지 미안해야 할 것 같았고, 실제로 미안한 감정을 느꼈으며, 한없이 움츠러들었다.
결국 반 포장(이라고 쓰고, 쏟아붓기라고 읽는다) 이사가 마무리됐다. 말이 반 포장이지, 그냥 커다란 이삿짐 비닐봉지에 쏟아 부어 담고, 다시 쏟아붓다 보니 물건들이 성해 날 일이 없었다.
가끔 지친 몸을 의탁해 피로를 풀던 좌식 안마기도 부서지고, 리클라이너 의자의 레저는 찢겼으며, 스탠드 조명도 망가졌다. 뭐 대충 확인한 정도가 이 정도니 아마도 망가지거나 부서진 물건들은 더 많으리라. 하도 짐 많다고 타박을 하니 짐을 그렇게 함부로 부려 놓아 망가진 것들에 대해 제대로 된 사과도 받지 못한 채 그들은 쓰레기장을 방불케 할 정도로 거실에 짐을 마구 부려 놓고는 떠났다.
떠나기 전 그들은 점심도 못 하고 일했으니 밥값이라도 얹어달라며 별도의 돈을 요구했다. 배상을 요구해야 할 판에 수고비라니. 가당키나 한 일인가.
콜센터에 전화했다. “‘시간이 돈’인 직종은 많지만, 빨리 일을 마쳐야 한다고 이렇게 막장으로 일하는 사람들은 처음 봤다. 대리기사나 배달 직종에 종사하는 사람들도 ‘시간이 돈’이다. 그렇다고 서비스를 그렇게 함부로 하지 않는다. 짐이 많아 그만큼의 비용을 지불하고 차와 사람을 쓴 것인데, 짐이 많은 것이 그렇게 잘못된 일인가. 그리고 물건이 많이 파손됐다. 비용 문제는 다시 얘기해야겠다”고 따졌다. 제대로 된 사과도 받았고, 적절한 배상도 받았지만, 왠지 씁쓸하고 찜찜했다.
그렇게 6시간여에 걸친 이사가 종료되고 정리는 온전히 나의 몫이 되었다. 쓰레기장을 방불케 하는 온갖 짐을 정리하다가 다 정리도 못한 채 지쳐 잠이 들었다.
“아. 이게 여기 있었구나?” “이런 것도 있었네?” 짐을 정리하다 보니 짐을 정리하는 것은 추억을 새로 꺼내 보는 일이며, 추억을 쌓고 버리는 일과도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버려야 잘 산다’고 얘기하는 사람들도 있고, 감탄이 나올 만큼 잘 정리하면서 사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이사를 하며 ‘여전히 버리는 것에 익숙하지 못한 나’를 깨닫게 됐다는 것. 쓰지도 않을 물건들을 언젠간 쓰일 것이라 생각하고 사뒀다가 어느 박스안에 갇혀 있던 나의 물건들처럼 나의 인연과 추억들도 비슷하게 켜켜이 쌓이고 묵혀 있는 것 아닐까.
새로 이사한 집에서는 정말 ‘언젠간 쓰일지도 모를’ 물건들은 과감히 정리하고 스마트한 생활을 누려보리라 다짐하지만, 글쎄... 가능한 일인지 지켜볼 일이다. <저작권자 ⓒ 시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가슴은 따뜻하게, 펜 끝은 날카롭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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