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평섭의 세상이야기] 촛불을 훔쳐 성경을 읽어라?
변평섭 | 입력 : 2023/04/05 [09:09]
도둑이 어느 집에 침입해 현금과 목걸이 등 1000만 원 상당의 금품을 빼앗아 달아났다.
그 도둑은 자신이 강도짓을 한 집이 노모와 딸만 사는 가난한 형편임을 알고 양심의 가책을 느껴 어느 교회 목사님께 편지를 보냈다. 사실을 고백하고 수표 100만 원을 보내니 그 가난한 모녀를 위해 기도해달라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그 강도는 훔친 1000만 원에서 100만 원을 교회에 헌금한 것이니 ‘십일조’를 지켰다고 생각했을까? 강도짓을 한 죄가 삭감됐다고 위로했을까?
이 이야기는 실제로 최근 SNS에 소개된 내용이다. 이 세상에는 뇌물을 받은 돈 가운데 일부를 ‘불우이웃 돕기’ 성금이나 자선사업에 기부하는 사람도 있고, 부정한 방법으로 돈을 번 사람들, 또는 탈세 같은 불법 행위로 축재를 하여 선행을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과연 이것이 자선이고 참된 선행일까?
서양에는 ‘성경을 읽는다고 촛불을 훔치지 말라’라는 속담이 있다. 아무리 목적이 좋아도 방법이 정당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정신이 서양 기독교 윤리의 큰 주류를 이루어왔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거꾸로 목적이 정당하면 수단과 방법은 문제가 되지 않는 경우가 너무 많다.
우리 현직 국회의원 중에는 남민전(남조선민족해방전선) 사건에 연루되어 강도짓을 하다 경비원을 칼로 찌른 죄로 징역을 살고 나온 사람이 있다. 그는 70년대 자기가 속한 조직의 혁명자금을 모으려고 동아건설 회장 집에 침입했는데 경비원에게 발각되자 그를 칼로 찌른 것이다.
그런데도 그는 국회의원 3선을 누리고 있다. 자칫, 자라나는 세대에게 목적만 정당하면 무슨 짓을 해도 좋다는 잘못된 의식을 심어줄지 모른다. 물론 그 목적의 정당성 여부도 문제이지만.
우리 헌법재판소는 소위 ‘검수완박법’ 위헌 심판에서 민형배 의원의 ‘위장 탈당’ 등 절차에 잘못이 있지만 국회 본회의 통과는 유효하다는 판결을 내렸다.
이에 대해 국민의힘에서는 ‘술은 마셨지만, 음주운전은 아니다’라는 식의 괴변이라고 반발했고, 민주당에서조차 박용진 의원 같은 사람은 ‘꼼수 탈당의 민형배 의원, 그리고 국회 심의 표결권 침해에 대해 민주당은 국민들께 깨끗이 사과해야 한다’라고 하는 등, 논란이 크다.
헌법재판소가 5대4로 민형배 의원의 꼼수 탈당과 국회 내 소수 의견을 존중하고 숙의할 수 있도록 한 안건조정위원회를 무력화시킨 것이 잘못이라고 지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과는 커녕 민형배 의원은 곧 민주당에 복당할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이렇게 되면 앞으로 대한민국 국회에서는 다수 의석을 가진 정당이 필요에 따라 의원들을 일정 기간 위장 탈당시키는 변칙이 빈번하게 발생할 수 있다.
그래도 헌법재판소는 절차는 잘못됐지만 결정은 유효하다고 판결해줄 것 아닌가? 국민을 농락하는 것이고 부끄러운 일이다.
어떻게 보면 헌법재판소는 나쁜 길을 열어주었다. ‘길이 아닌 풀밭도 한 번 다니기 시작하면 길이 된다’라는 말이 있듯이 앞으로 제2의 위장 탈당, 제3의 위장 탈당… 그런 변칙이 횡행할 것이다.
그럴 경우 자라나는 세대가 민주주의에 대한 그릇된 생각을 갖게 될까 걱정이다. 뿐만 아니라 정치에 냉소적인 많은 국민들에게 위장 탈당을 해서라도, 강도짓을 하더라도 목적만 이루면 된다는 퇴폐적 풍조를 조장할까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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