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나그네 길이 아니다”

유의호 편집국장 | 기사입력 2019/10/08 [16:48]

“인생은 나그네 길이 아니다”

유의호 편집국장 | 입력 : 2019/10/08 [16:48]

 

▲ 유의호 편집국장     © 시대일보

나이가 세월을 먹었다. 늦은 나이는 가고 빠른 나이만 남았다.

 
살다보면 문득 다가온다. 왜 이리 세월이 더딘가 했던 것이 엊그제인데 지금은 살과 같다는 말이 실감난다.

 
글을 쓰다보면 어느 샌가 몽당연필이 된다. 신문편집을 하다보면 신문지에 설계를 위해 색연필을 사용하게 되는데 내가 소화해야 할 분량이 평균 1.5자루가 된다.

 
하루치다. 줄만 긋는데 종이 껍질을 벗기다 보면 한 달이면 몽당 색연필이 연필통에 가득하다.

 
대부분 버림이다. 몽당연필이든 분필든 색연필이든 끝부분까지 사용되기 보다는 사용이 불편하게 되면 버리게 된다.

 
사람도 살다보면 버림을 받게 되는 몽당 나이가 된다. 사람이 사람에게 유익함이 없다면 떠나야 함을 스스로 감지하게 된다. 의지해서 살아야 할 나이가 되면 누굴 원망도 서럽다 할 것도 없이 세월과 함께 돌아가야 추함이 없다.

 
스스로 버텨나갈 힘이 있다면 세월을 더 훔쳐도 된다. 하지만 모든 게 비엇거든 빈 잔에 소주 한 잔 붓고 훌훌 짐을 털어버리면 싶다.

 
어릴 적에는 내가 세월을 먹어야 나이가 들었다. 어느 때부턴가는 나이가 세월을 먹는다. 그 후론 세월이 나를 삼키기를 시도 때도 없이 시도한다.

 
40대까지는 나도 잊은 채 허덕거리며 살다가 50대가 되면 무엇을 했는지 기억도 없이 사라지는 세월을 산다. 비로소 60이 넘어 다시 ‘甲’의 원년이 닥치면 하얀 밤을 지새우게 된다. 세월이 순간이라도 나를 삼켜 버릴까봐 사실은 두려워 밤잠을 쫓음이다.

 
파란하늘 구름언덕이 어느새 서녘 붉은 하늘 마루턱에 걸터앉아 지나온 발자취를 더듬는다. 잘 살아온 것일까 끝없이 반문해보지만 잘 사는 법의 방정식이 없고 보니 답도 없는 삶을 살아왔음에 후회만 가득할 뿐이다.

 
정말 답도 없는 삶을 왜 이리 아등바등 대며 살아왔던가. 이제 그 답을 찾아보련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기에 그 끝선에서 돌아갈 채비를 하고 싶다. 막연했던 삶의 시간들을 이제 정리하고 남은 인생은 확연하게 내 육신이 아닌 내 영혼을 위해 살아가자 다짐해 본다.

 
‘죽었다’라는 마침표가 아닌 ‘돌아갔다’로 마무리 져야 한다는 생각이다. 온 길을 모르면 죽는 것이고, 깨달으면 내 본향으로 돌아감이다.

 
이 깨달음은 육신과는 거리가 멀다. 욕망으로 해결될 수 없기에 이 땅에서 그 해답을 구함은 불가능이다.

 
우리 육체의 삶의 구세주는 돈이다. 그러나 그 돈이 영혼의 구원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다. 돈이나 명예나 지위를 통해 영혼이 위로 받지 못한다. 충족의 조건이 다르기에 생을 마감할 나이쯤이면 관점을 달리해야 한다.

 
내가 전부로 알고 살아 온 물질만능은 육체를 배부르게 할 뿐 ‘나’를 위로하진 못한다. 그래서 육체가 그 수한을 다해 죽음을 목전에 두면 두려움이 엄습해 온다. 지금까지 나는 나의 육체만을 섬기기 위해 일생을 살아왔기에 내 육체를 지배해 왔던 또 다른 나를 발견하기 때문이다.

 
이를 종교에서는 ‘영혼’이라고 부른다. 그 동안의 삶은 눈에 보이는 것만을 위해 살아왔고 그것을 전부로 여겼기에 ‘영혼’이란 단어 자체는 한 쪽 마음 구석에 전당해 놓고 살았다. 그 영혼이 흙으로 돌아가고 육체의 삶이 마감될 때 영혼만 남는다는 것이다.

 
죽음과 함께 육체도 영혼도 모두가 사라진다면 과연 인간이란 존재 가치를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인생은 나그네 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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