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러설 수 없을 때 물러설 줄 알아야

[데스크칼럼] 유 의 호 <편집국장>

유의호 편집국장 | 기사입력 2019/09/23 [18:03]

물러설 수 없을 때 물러설 줄 알아야

[데스크칼럼] 유 의 호 <편집국장>

유의호 편집국장 | 입력 : 2019/09/23 [18:03]

 “가장 잔인한 인간= 자기를 숭배하는 인간”

▲ 유의호 편집국장   © 시대일보

내 생각 내 주장이 옳다 맞다하면 상대방의 그 어떤 주장도 받아들일 수가 없다.

 
싸움꾼의 특징은 상대가 한발짝 양보하면 한발짝 다가선다.

 
양보로 받아들이지 않고 자신이 없어 물러섰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람의 됨됨이는 양보의 미덕에서 비롯된다.

 
물러설 수 없을 때 물러설 줄 아는 용기가 진정한 양보다.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은 나의 스승이라 했다’ 이 말의 진정성은 내 주장, 내 생각을 창과 방패로 삼지말라는 의미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한 상대의 말은 틀렸다는 것을 전제한다.

 
항상 내가 옳다고 하면 그 주변에 어떤 이도 함께하지 않을뿐더러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부모자식이나 친인척도 마음에서 나를 삭제하고 나를 대면하는줄 깨달아야 한다.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인간이 자기를 숭배하는 인간이다.

 
곧 신처럼 명령하고 신처럼 행동하며 마땅히 자기의 말은 지상명령인줄 아는 사람이다.

 
이것이야말로 가장 어리석은 인간이 하는 짓이며 가장 불행한 삶임을 당대에 깨닫게 된다.

 
모든 축복은 가장 낮은 곳에 임한다.

 
나는 어리석은 자요 내 생각은 늘 틀렸다고 여기고 판단과 기준을 나의 지식에 묶어두지 않고 상대를 나의 스승으로 여기는자가 가장 낮은자다.

 
이미 콧대를 세우고 자신의 지식으로 남을 업수이 여겨봤고 우쭐한 마음에 세상을 다 얻은것처럼 거들먹거려 봤지만 결과는 아무것도 얻은게 없음을 깨닫게 된다.

 
이겨도 진것이요 져도 진것인 세상살이를 한참후에 느끼고 그것이 심장에 새기게 되면 이기려하는 무모함에 도전하지 않는다.

 
정복한 후의 쾌감은 잠시 잠깐이다. 오르고 올라 태산을 정복했을 때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지만 그후에 또한 내리막길을 걸어야 한다.

 
우리가 정복할 것은 첩첩산중이 아니라 내마음을 꺾는 것이다. 내 생각을 정복하는 것이다.

 
내마음은 언제나 두갈래로 갈려져 있어 항상 좌우논리에 시달리며 살아간다.

 
어느것이 정답인지 모른다. 결과가 도래되면 그때서야 후회한다. 어느 쪽을 선택하든 결과는 후회막급이다.

 
그것은 내가 선택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나에게 선택권을 줬기 때문에 그 결과에 만족할 리가 없게 마련이다.

 
그 이유는 나의 선택은 갈대와 같기 때문이다.

 
성경에 나타난 인물중 사도바울은 사도중에 사도라 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다. 내 마음이 두마음이니…’ 하나는 악이요 하나는 선을 쫓는거라 했다. 모든 인간의 번뇌를 한눈에 새길 수 있는 말이다.

 
따라서 그 어떤이도 내가 선택하는 순간 악도 악이며 선도 악일 뿐이다.

 
나의 선택권을 박탈하면 악도 선이 되고 선도 선이 된다.

 
사람의 생각은 언제나 악하기 때문에 사람이 생각하는 선도 악에서 출발하기에 선악의 구분이 없다.

 
사람의 삶은 욕망이다.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페달은 있어도 브레이크는 없다.

 
항상 위험이 존재한다. 그러나 욕망의 끝이 없기에 브레이크는 거추장스러울 뿐이다.

 
그 결과는 죽음이다. ‘욕심이 잉태한 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는다’했듯이 말이다.

 
이 결과를 모르는 인간은 하나도 없다. 그래도 그길로 간다. 그 이유는 브레이크는 장식품일 뿐이기 때문이다.

 
이 욕망을 인간은 뿌리칠 힘이 없다. 욕망을 뿌리칠 수 있다는 것은 사망에 이르지 않는다는 말과 같다.

 
인간의 욕심은 세가지다.

 
첫째는 잘먹고 잘사는 것 둘째는 천하를 얻는 힘(권세) 셋째는 신이되는 것(조물주에게 도전)이다.

 
먹고사는 빵 문제 해결을 위해 피땀을 흘린다. 이것이 해결되면 권력을 갖고 호령하고 싶고 이것 또한 성취되면 자신을 신격화하는 것이다.

 
조물주는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먹지 말라는 ‘선악과’를 따먹은후 이렇게 말했다.

 
저들이(아담·하와) 선악과를 먹고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중 하나같이 되었으니 그들이 그손으로 생명과일을 따먹고 영생할까 염려해 그들을 에덴동산에서 내어 쫓았다 했다.

 
의미심장한 말이다.

 
이것이 신에 대한 도전이다. 신은 인간이 악한 마음을 갖고 영생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뜻이다.

 
결론하자면 ‘인간은 항상 악할뿐’이라는 사실을 간과해선 안된다.

 
따라서 내 판단과 내 기준으로 남을 가르치려 하지 말고 나를 믿고 행동하지 말아야 가정도 사회도 국가도 제 갈길로 갈 수 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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