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종교개혁 500주년에서 한국교회 성장과 그늘

박 정 길 기자 (오산화성) | 기사입력 2017/03/27 [00:00]

[특별기고] 종교개혁 500주년에서 한국교회 성장과 그늘

박 정 길 기자 (오산화성) | 입력 : 2017/03/27 [00:00]
조선왕조 체제는 正學(정학)이념으로 주자학이외 사상,불교등 불허 했으며 구교(천주교)는 배척의 대상으로 모진 박해와 희생을 당했다.
개항이후 1884년 갑신정변 일어나던 해에 미국의 선교사들이 들어와 의료,문화사업등 진취적 활동이 宮庭(궁정)의 호의적 반응으로 1885년 선교사 장로교"언더우드"와 감리교 "아펜젤러"입국 상주하여, 교회,서양교육시설이 설치되면서 개신교는 무난히 안착됐다. 천주교는 순교의 참극을 치른데 반하여 개신교는 비교적 평탄한 안주는 집권층 성공적 접근 이유도 있으나 서구문명과 일본,중국의 서양 지향적 발전 영향에 쇄국정책만을 고집할수 없었던 상황에 기인했을것이다. 개신교는 정착후 낙후된 사회에 과제인 복음전파 보다 외세로부터 조선인을 구하겠다는 생각이 앞섰다.교회에서는 새로운 교육을 실시하고 책을발간하고 과학을 소개하며 도덕적 표준을 높이고 사회악 개혁,산업을 장려 조선인으로서 새삶, 인생관 세계관을 소개,개화사상을 주입했다.개신교는 선진문명으로 민족의 비전을 제시하면서 복음전도에도 서서히 펼쳤다. 청일전쟁후 신자는1895년750명,1896년8500명,1900년 18000명 급격한 교인의증가, 특히 서북지방에서 주로 부흥되었고 후일 평양은 기독교중심지로 조선의 에루살렘으로 부를정도였다.김일성의모친 강반석권사,외삼춘 강양훈목사 라는것은 익히 아는바다.성경번역은 "신약"이 1900년 "구약"은1911년 각각 완역되어 개신교 인식을 넓혔다. 日帝(일제)는 교회의괄목할만한 교세에 저항하여 신사참배는 국민의례라며 강요했고 처음에는 강한거부를 했으나 교회들은 점차적으로 굴복 감리교,장로교,성결교와 천주교도 공식 참배를 결의했고 일부기독교지도자들은 일제찬양 연사로 나서기도했다. 1945년 일제패망,기독교인 이승만과 대한민국정부수립, 박정희의반공체제,6,25전쟁전후 북한기독교인대거월남,등은 한국개신교의 새로운 부흥의토양이 마련된 계기가 됐다. 이승만정권시대는 교인들이 정부참여와 옹호로 공산세력을 배격했고 박정희정권의국시 반공은 개신교 전도활동에 힘이되었으며, 월남교인들 단합된 교회설립과 역활은 한국근대교회의 초석으로 상당한교인증가, 중,대형교회로 성장하는 밑거름이 됐다.
초기입교 교인들 윤치호,홍정후,이승만등은 배재학당(아펜젤러설립)을 기반으로하여 독립협회 운동추진 핵심이였고 이상재,유성준외12인은 옥중에서 집단입교하여 당시 지식층 개화파 인사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일제하의 성재 이동휘선생은 캐나다 선교부 후원을 받아 전도사로서 역동적 선교활동을 했으나 기독교고유 복음전도보다 나라와민족 살리기에 주력했고 후에 고려공산당을 창당했다. 교인이라기보다 기독교를 거처간 행위였다.1970년대 군사정권시대 민주화운동의 주축이던 많은 학생층등이 교회를 찾았다. 교회 입교가 아닌 자신들의 민주화운동 보호구역 필요성 때문이였다.점차 민주화운동 여건이 좋아지자 더이상 기독교라는 울타리가 필요없자 그들 대부분 교회를 나가 외면해버렸다.종교조직을 잠시빌린 위장교인이였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을 거치면서 선교부흥회를 이끈 성직자의 사명은 1천여만명의 교인 증가,개척교회에서부터 중,대형교회로 세계의 개신교국가로 부상했다. 외형으로본 대형교회규모는 세계1,2위을 차지했고 50위권에도 절반을 차지한다고한다,반면 거침없는 교세부흥중 일부 목회자들은 전하는 말과 삶이 일치하지않고 "금전사욕" "금전횡령" "교회세습" "성추행,도덕적해이"등 부정적 이미지로 表裏(표리)있는교회로 중세교권시대를 연상하게했다..지난해 5월 신문지상에 존경받는 직업(44개)별 순위는 *1996년개신교목사17위,가돌릭신부23위,불교스님33위,*2016년가돌릭신부24위,불교스님29위,개신교목사34위, 내용을 보면 3대성직자중 1996년에는 목사가신부,스님보다 1위로서 존경을 받았으나 2016년도에는 신부,스님에 이어 끝순위로 처졌다. 이결과는 개신교 일부 목회자 일탈로인한교회에대한 사회의엄중한 시선이다, 500년전 "면죄부를 구입하면 자신은 물론 부모까지 죄 사함을 받고 천국에 이른다"라며 대중의눈과 귀를 현혹하자 면죄부를 반박하는 95개논조를 "마르틴 루터"는 1517년 10월31일 비덴바르크성 교회문에 게시 종교개혁이 시작됬다. 이종교적사건을 과거 역사로 간과할것이 아니라 자성하는 기회로 이시대 교회실상을 재조명하여 사명을 감당하는 교회로정립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하는 한해를 기대한다.

박 정 길 기자 (오산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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