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일보=김명회 기자]대한민국 반도체 산업의 미래를 떠받칠 핵심 축으로 설계된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를 둘러싼 ‘이전 논란’이 반복되고 있다. 정부는 이미 여러 차례 “이전은 검토 대상이 아니다”라고 밝혔지만, 정치권과 일부 지역에서 이전 또는 분산 필요성을 거론하는 발언이 끊이지 않는다. 이 논란은 단순한 지역 갈등이 아니다. 국가전략 산업을 대하는 우리 사회의 태도와 정책 신뢰 수준을 드러내는 시험대다.
이전 주장이 재점화되는 가장 큰 배경은 지역균형발전이라는 정치적 명분이다. 수도권 집중 완화는 분명 중요한 과제다. 그러나 반도체 클러스터 이전을 균형발전의 해법처럼 제시하는 순간, 정책 논의는 본질을 잃는다. 반도체는 선심성 분산이 가능한 산업이 아니다. 수십 년에 걸쳐 축적된 인력, 공급망, 기술 집적도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초고도 전략 산업이다. 이를 선거 국면의 논리로 재단하는 것은 무책임에 가깝다.
전력 문제를 둘러싼 논쟁도 마찬가지다. “전력이 남는 지역이 더 적합하다”는 주장은 겉으로는 합리적으로 들리지만, 반도체 산업의 특성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 단순화된 인식이다. 반도체 공정에 필요한 것은 단순한 발전량이 아니라, 24시간 무중단이 가능한 전력 안정성, 정밀한 전압·주파수 관리, 그리고 용수·가스·물류가 결합된 종합 인프라다. 이미 이러한 조건을 전제로 설계된 용인 클러스터를 다시 흔드는 것은 산업 논리가 아닌 정치적 해석에 가깝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전 가능성 자체가 만들어내는 불확실성이다. 반도체 투자는 조 단위가 아니라 수십조 원 규모의 장기 결정이다. 입지에 대한 논쟁이 반복되는 것만으로도 기업의 투자 일정과 협력사의 계획은 흔들릴 수밖에 없다. 정책 불확실성은 그 자체로 산업 경쟁력의 비용이다. 글로벌 반도체 경쟁이 국가 총력전 양상으로 전개되는 상황에서, 내부 논란을 방치하는 것은 스스로 발목을 잡는 행위다.
지역균형발전과 반도체 산업 전략을 혼동해서도 안 된다. 균형발전은 반드시 필요하지만, 그 해법은 핵심 거점의 이전이 아니라 기능의 분산과 역할의 분화다. 반도체 공정의 중심은 용인에 두되, 연구개발, 후공정, 인력 양성, 소재·부품 특화 단지는 비수도권에 전략적으로 배치하는 방식이 더 현실적이고 지속 가능하다. 국가 전략은 선택과 집중 위에서 작동해야 한다.
이제 필요한 것은 명확하다. 정부는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에 대한 국가 차원의 확정적 의지를 더 이상 흔들림 없이 보여줘야 한다. 동시에 전력·용수·교통 등 인프라 공급에 대한 중장기 로드맵을 투명하게 제시해 불필요한 정치적 해석의 여지를 차단해야 한다. 정치권 역시 반도체를 지역 공약의 소재가 아니라 국가 생존 전략으로 다뤄야 할 책임이 있다.
반도체는 타협의 대상이 아니다. 대한민국이 기술 패권 경쟁의 한복판에서 살아남기 위해 선택한 국가전략이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이전 논란이 반복될수록, 세계는 한국의 전략 일관성을 의심할 것이다. 이제 질문은 분명하다. 우리는 반도체를 정치의 언어로 다룰 것인가, 국가의 언어로 다룰 것인가. <저작권자 ⓒ 시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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