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일보]‘지혜자의 마음은 초상집에 있으되 우매한 자의 마음은 혼인집에 있느니라’ 전도서 7:4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칫집에 가는 것보다 나으니 모든 사람의 끝이 이와같이 됨이라 산자는 이것을 그의 마음에 둘지어다’ 전도서 7:2
이 말을 역설하면 ‘지혜자의 마음은 죽을때를 생각하지만, 어리석은 자들은 즐길 생각만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인생은 ‘오고감’이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듯이 한번 오고 한번 가는 것은 정해진 이치다. 이 어렵지 않은 사실을 간과하기 때문에 비로소 죽음이 목전에 다다른 지경쯤에야 준비하지 못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사람으로 태어났으니 사는동안 주어진 일에 충실하면서 열심히 살아야겠으나 사는 날의 정점이 어느때인지는 그 누구도 알 수는 없지 않는가. 또한 죽음이란 낯설지 않은 단어지만 마치 남의 일인 듯 우리는 남의 죽음앞에서 남이야기하듯 문상을 하고 돌아오지 않던가. 그 죽음이 곧 나의 죽음을 암시하는 것이며 생생한 그림자임을 왜 애써 모른척, 태연한척 하는가 말이다. 왔으면 돌아가는 것은 자연의 이치요 숙명이다. 어떤 생명체도 정해진 수한을 넘기지는 못하며 길어봐야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의 수명도 백여년이 고작이다. 우리 눈으로 똑바로 직시하며 살아가면서도 인간은 어리석게도 이를 외면하며 살아가고 있다. 눈앞에 놓인 높고 낮음과 많고 적음은 그저 잠시 잠깐 무대위에 올려놓은 연극에 불과함은 삼척동자도 기 알고 있는 바다.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칫집에 가는것보다 낫다’라는 것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바로미터이자 지침서이다. 우리가 지금 사는 방법과 방향을 보자. 누구나 한치의 오차없이 영원히 살것처럼 쌓는 일에 몰두하고 먹고 사는일에 집중한다.
‘희로애락’의 시작과 끝은 오로지 자신의 욕망을 채우는 것일 뿐이며 만족과 부족이 기준이다보니 욕심의 끝판왕인 인간이 잠시라도 쉴틈이 없다.
누구나 늙고 병듦은 피차일반인데 욕심으로 일군 만족이 결코 이를 해결짓지 못한다. 인간을 포함한 삼라만상의 생명체들은 그저 잠시 머물다 떠나는 것 뿐 이땅위에 지상천국을 건설한다해도 영원할 수는 없다. 어떤 권력도 재물도 잠깐 사는동안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데 목숨을 걸고 쟁취하고 보존하려는 어리석음이 모든 화를 자처하는 법이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고 먹고나면 배설해야 한다.
자연의 이치를, 순리를, 힘으로 거스르려하면 반드시 패망한다. 폐일언하고 내가 쥔 것은 본래 내것이 아니다.
내가 애써 쟁취했다고 내맘대로 행사해서도 안된다. ‘화무는 10일홍’이요 ‘권불세도 10년’이라 했다.
사람이 사람위에 군림하는 것은 가장 큰 해악이다. 왔으면 가는 것을 깨닫는게 그리 어렵던가!
있고 없음이 잠시 거쳐갈 세상에서 과연 얼마나 절실할까? 허무한 삶을 허무한 것으로 채우려 발버둥칠게 아니라 사는동안 자타일여(自他一如) 정신으로 살아가며 내 태어나기 전모습과 내가 떠난 후의 모습을 생각하며 현재 내모습을 다듬어가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이것이 허상과 실상을 찾는 길이요 自我를 만날 수 있는 길이다.
인생의 여정을 흔적없이 살다가는 우를 범하지 말고 많은 사람들에게 길이 되고 본이 되는 참길을 열어 자신과 타인 모두에게 공익인간이 되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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