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일보]헌법재판소가 1주일 뒤 멈춰서게 될 것으로 우려된다. 국회가 17일 자로 퇴임을 앞둔 이종석 헌재소장과 이영진·김기영 재판관 3명 후임을 뽑지 않아서다.
8일 열린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 탄핵 심판에서 문형배 헌법재판관은 국회 측 변호사에게 “재판관 3명이 공석이 되면 법에 따라 변론을 열 수 없게 된다”면서 “청구인의 입장은 무엇이냐”고 질책했다. 국회 측에서 별다른 답을 내놓지 못하자 문 재판관은 “대응 방안도 없으시겠다”고 비꼬았다.
헌재는 대통령과 대법원장이 임명하는 각 3명과 국회 선출 3명 등 총 9명으로 구성되며 사건 심리에는 최소 재판관 7명이 출석해야 하는데 국회 선출 몫인 3명이 채워지지 않으면 정족수 미달로 헌재 기능이 마비될 수밖에 없는 상태다.
헌재 기능이 마비 위기에 처한 것은 민주당이 국회 몫 재판관 3명 중 2명을 추천하겠다고 고집하기 때문이다. 국민의힘은 2000년부터 이어진 관례대로 여야가 1명씩 추천하고 나머지 1명은 여야 합의로 결정하자는 입장이지만, 더불어민주당은 의석수가 많다는 이유로 2명을 추천하겠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동안 지금과 비슷한 의석 분포일 경우 여야가 각각 1명씩 추천하고 나머지 1명은 서로 합의하는 방식으로 해왔다. 그런데 민주당은 2명을 추천하겠다고 고집하는 것이다.
이런 상태라면 민주당이 마음만 먹으면 마음에 들지 않는 장관을 탄핵해 돌아오지 못하게 할 수 있다. 탄핵 소추가 되면 해당 공직자는 직무 정지 상태가 되기 때문이다. 사실상 공직자 해임권을 민주당이 갖는 셈이다. 실제로 11월 12일 정식 변론이 예정된 이 방통위원장 탄핵 심판이 중단되면서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이 위원장의 직무 정지는 무기한 이어지게 된다. 민주당이 친야 성향인 MBC 경영진 교체를 막기 위해 의도적으로 헌재를 마비시키려 한다는 의심을 사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나아가 헌재가 기능을 못 하는 상태에서 대통령 탄핵안을 내고 실제 소추가 이뤄진다면 곧바로 헌정 마비로 이어질 수도 있다.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 공세를 펴는 야당이 대통령 직무 정지 장기화 또는 탄핵 결정을 염두에 두고 재판관 추천에서 주도권을 쥐려 한다는 분석도 무리가 아니다.
위헌 법률 심판 및 탄핵 심판 등을 관장하는 헌재 기능이 마비되면 입법·행정·사법부 간 정상적인 견제와 균형이 불가능해지고 법치주의 등 헌법 가치도 흔들리게 된다. 국회가 정쟁을 벌이느라 헌정 질서를 위협하고 국정 공백을 초래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아무리 정치가 엉망이어도 핵심 헌법기관까지 멈춰 세우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대로라면 “야당이 헌재 무력화를 통해 야당 단독으로 탄핵 절차 완성을 노린다”는 음모론이 현실이 된다.
설마설마한 헌재 마비 사태가 실제 상황으로 다가와 있다. 재판관 3명의 임기 만료가 불과 1주일 앞으로 다가와 당장 선출 방식에 합의해도 청문회와 국회 동의 등을 밟으려면 이미 늦었기 때문이다. 여야가 한발씩 물러서지 않으면 초유의 헌재 공백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헌재 마비의 부작용은 엄청나다. 우선 민주당 관련 수사를 했다 탄핵 소추당한 검사 등 공직자들의 직무 정지가 장기화하는 것은 물론 민주당이 헌재 마비를 이용해 탄핵 소추를 남발(濫發)할 경우 업무가 장기간 정지되는 공직자가 더 늘어난다. 정부 여당이 거야(巨野)의 폭주에 저항할 수 있는 권한쟁의, 효력 정지 가처분 신청도 불가능해진다.
국가 기능이 마비되는 최악의 사태를 막고 거대 야당이 정치적 계산 때문에 일부러 헌재를 마비시키려 한다는 오해를 벗어버리려면 민주당은 후임 재판관 선출 절차에 적극 나서야 한다. 정 배분 합의가 어렵다면 먼저 여야 몫 1명씩이라도 선출해 우선 헌재 기능을 정상화하는 것도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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