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일보]문재인 정부 초대 대통령비서실장을 지낸 임종석 전 실장이 지난 19일 9·19 평양공동선언 6주년 기념식에서 “객관적 현실을 받아들이고 두 개의 국가를 수용하자”며 사실상 ‘통일하지 말자’는 주장을 펴 논란이 일고 있다.
임 전 실장은 이날 기조연설을 통해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 도서로 한다’고 규정한 헌법 3조 영토 조항도 지우든지 개정하자”면서 “국가보안법을 폐지하고 통일부를 정리하자”고도 했다.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3기 의장 출신으로 줄곧 ‘통일 운동’에 매진해온 그의 발언은 한마디로 뜬금없다.
더욱이 그의 발언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해 말 들고나온 '적대적 두 국가론'을 연상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김 위원장의 주장을 복창하는 것과 다름없다는 비난을 사고 있다. 김 위원장은 당시 당 중앙위 전원회의에서 "북남 관계는 더 이상 동족 관계, 동질 관계가 아닌 적대적 두 국가 관계"라고 규정하고 통일은 성사될 수 없다고 발언한 바 있다.
다만, 임 전 실장은 김 위원장이 주장하는 '적대적 두 개의 국가 관계'는 있을 수 없고 "평화적인, 민족적인 두 국가여야 한다"며 차별점을 강조했지만 거센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반미자주통일을 추구하는 민족해방(NL) 계열 운동권의 대표적 인물로 2018년 남북정상회담 준비위원장을 맡기도 했던 인사가 통일하지 말자는 주장을 펴니 누군들 그의 발언을 곧이듣겠는가. 1980년대 통일선봉대 운동을 폈던 전대협 의장 출신으로서, 2019년 정계 은퇴 이유도 통일 운동 매진해왔던 터라 그의 발언은 매우 충격적이다.
임 전 실장은 지금의 남북 관계 상황과 우리 사회의 통일관 변화를 주장의 근거로 들면서 "신뢰 구축과 평화에 대한 의지 없이 통일을 말하는 것은 상대에 대한 공격과 다름없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윤석열 정부의 대북 정책을 "좋게 얘기하면 힘에 의한 평화, 그냥 얘기하면 '전쟁 불사'로 보인다"고 비판하고 "통일을 꼭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내려놓고 단단히 평화를 구축하고 이후의 한반도 미래는 후대 세대에게 맡기자"는 논리를 폈다.
국민 사이에서도 통일에 대한 강한 의구심이 존재하고 젊은 세대로 갈수록 의구심이 거부감으로 나타난다는 것이 그의 논리였지만, “통일이 무조건 좋다는 보장도 없다.”, “통일 논의를 완전히 봉인하자”라고까지 한 그의 발언은 민주당 원로 인사들조차 반박하고 나섰다.
통일부 장관을 지냈던 정동영 민주당 의원은 "'두 국가론'은 헌법 위반"이라며 "남북은 나라와 나라 관계가 아닌 잠정적으로 형성된 특수 관계라는 기둥 하에서 통일을 추진해왔는데, 이를 변경해야 할 어떠한 사정도 없다"고 일축했다. 국가정보원장을 지낸 박지원 민주당 의원도 "학자는 그렇게 주장할 수 있으나 현역 정치인의 발언으로는 성급했다"라고 꼬집었다.
독일 분단 시기에 동독이 ‘두 국가론’을 펴자 서독은 “동독은 외국이 아니다”라고 일축했던 것을 떠올려보면 통일을 위해 어떤 논리가 옳은지는 명약관화(明若觀火)한 것이 아닌가.
물론, 사회 변화에 따라 통일에 대한 필요성 인식이 갈수록 희미해지고 있는 것만큼은 사실이다. 따라서 통일 담론도 현실에 맞게 변화, 발전시켜야 할 필요는 있다. 학계에서 '자유로운 왕래가 가능한 두 국가 체제' 같은 다양한 제언이 나오는 것도 현실이다. 그렇다고 지난 정부 핵심 인사가 통일하지 말고 평화를 선택하자고 나서는 것은 무책임에 다름아니다. 통일은 한민족의 역사적 과제이자 시대적 염원이기 때문이다. 다선 국회의원이자 지난 정부 대통령비서실장까지 지낸 핵심 인사가 나서 공공연히 통일하지 말자는 주장을 한 것은 심각한 자기부정이자 반헌법적 발상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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