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일보]여야가 28일 국회 본회의를 열어 간호법 제정안과 전세사기특별법, 일명 ‘구하라법’ 등 총 28개의 비쟁점 민생 법안을 합의 처리했다. 지난 5월 말 22대 국회 개원 이후 여야가 민생 법안을 합의 통과시키기는 처음이다.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이 석 달 동안 소모적인 정쟁만 벌이다가 비교적 이견이 적은 민생 법안부터 8월 임시국회에서 처리하기로 합의한 후 이날 첫 결실을 본 것이다.
쟁점 사안이라도 여야가 각자의 주장만 고집을 버리고 한 발짝씩 양보해 결과를 도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특히 이날 의결된 간호법과 전세사기특별법은 지난 21대 국회에서 민주당이 단독 처리하고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해 폐기됐던 법률이었다. 여야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타협을 이뤄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단 점에서 이날 합의 처리가 거대 야당의 단독 입법과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법안 폐기가 반복되는 정쟁의 악순환을 끊을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본회의의 통과에 앞서 막판까지 진통을 겪은 간호법은 의사의 업무 일부를 보조하지만, 법적 근거가 없던 '진료 지원(PA) 간호사'의 합법화 근거를 마련한 것이 핵심이다. 여야는 PA 간호사의 업무 범위를 두고 이견을 좁히지 못하다가 전날 극적 타결을 이뤘다. 여당이 야당 입장을 대폭 수용해 구체적인 업무 범위를 보건복지부령으로 정하도록 합의한 것이다. 평행선을 달리던 여야의 간호법 협상이 막판 타협 국면으로 돌아선 데는 의료대란 우려 속에 나온 보건의료노조의 총파업 예고가 적잖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전세사기특별법은 전세사기 피해자 인정 범위를 확대하고 해당 주택을 피해자에게 공공임대로 최대 20년간 제공한다는 내용이다. 일명 '구하라법'은 자녀 양육 의무를 저버린 부모는 상속권을 갖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았는데 20대와 21대 국회에서도 발의됐지만 무산됐고 이번에 결국 세 번째 만에 국회 본회의 문턱을 넘었다. 이외에 대·중소기업 상생협력촉진법 개정안, 범죄피해자보호법 개정안 등도 통과됐다. 실생활에 직결되는 법안들이기에 통과가 늦었지만 협치하라는 국민 목소리에 응답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날 합의 처리된 법률 이외에도 여야가 거의 의견 절충을 이뤘는데도 정쟁에 밀려 처리되지 못한 법안이 한둘이 아니다. 딥페이크 성범죄 방지 대책이나 금융투자소득세 폐지 등 세제 개편, 고준위방사성폐기물특별법이 대표적이다. 특히, 국가 경제를 위해 하루라도 빨리 시행에 들어가야 할 법안들이 적잖다. AI(인공지능) 및 반도체 산업 육성에 필수적인 국가 전력망 확충법과 고준위 방폐장 특별법 등이 그것이다.
서로 양보해 민생입법에 결실을 본 취지를 살려 다른 민생 법안 처리에도 물꼬가 트이길 기대한다. 협치 분위기만 조성되면 쟁점 법안이라도 합의가 가능하다는 점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의제와 형식을 두고 여야가 기 싸움을 하는 여야 대표회담도 하루빨리 성사돼 국민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성과를 내야 할 것이다.
해병대 채 상병 특검법은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제안한 ‘제3자 추천’까지 포함해 여야 대표 회담에서 충분히 논의하길 기대한다. 야당이 추진한 ‘전 국민 25만 원 지원법’ 역시 여야 양쪽에서 내수 활성화를 위해 ‘선별·차등 지원’을 검토할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는 만큼 타협 여지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22대 국회가 정쟁에만 내몰린 사이 국민들은 고금리 장기화와 내수 경기 침체로 곳곳에서 생활고를 호소하고 있다. 여야가 정파적 이익에만 매몰돼 줄다리기할 때가 아니라는 얘기다. 여기에 의정 갈등을 비롯해 우리 사회의 여러 갈등은 해결 기미를 보이기는커녕 갈수록 첨예해지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여야는 이번 민생입법 과정에서 보인 양보와 타협의 정신을 살려 정치 본연의 기능을 회복하기를 바란다. <저작권자 ⓒ 시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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