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일보]지난 2월 의대 증원에 반대한 전공의들이 병원을 떠난 지 7개월째가 되면서 근근이 버텨오던 비상 진료체계가 응급의료에서부터 마비되는 사태에 이르렀다. 인력 부족으로 병원들이 하나둘 응급실 문을 닫고, 받아주는 응급실이 없어 뺑뺑이를 돌다 사망하는 사고가 잇따르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코로나19 환자가 급증하고 있는데 치료제 품귀 현상이 빚어져 혼란을 가중하고 있다. 119구급대원들이 “병실을 찾으려 전국 병원을 헤매던 코로나19 사태 때보다 더 열악하다”고 토로할 정도다. 응급·중환자 치료 역량이 떨어져 환자들 피해가 더 커진다는 우려가 크다.
응급실은 365일 24시간 가동돼야 하는 병원 최전방이다. 초진부터 응급처치, 전원 환자 처치 등을 동시에 하려면 적정 인원 교대근무가 필수다. 6개월간 제대로 쉬지도 못한 채 현장을 지켜온 의료진이 번아웃(탈진)으로 현장을 떠나면서 한계에 봉착한 병원들은 특정 요일이나 시간대 응급실 문을 닫고 병상을 줄이고 있다.
강원 속초의료원은 전문의 퇴사로 최근 일주일간 응급실 문을 닫았고, 충북대병원 응급실도 지난 14일 ‘올스톱’ 됐다. 세종충남대병원은 목요일마다 응급실 운영을 축소하고 있으며, 경북대·영남대병원 응급실도 외과·산과 등의 진료가 불가능한 상태다. 현재 전국 응급의료기관 408곳 중 의료진 부족으로 병상을 축소한 곳은 25곳에 달한다. 충북 유일의 상급 종합병원인 충북대병원 응급실은 지난 14일 진료를 일시 중단했고, 세종충남대병원은 이달부터 매주 목요일 응급실을 부분 폐쇄하고 있다. 전국 응급의료기관 408곳 중 응급실 병상을 줄인 곳은 25곳에 달한다.
더욱 심각한 것은 분초를 다투는 환자들이 빈 병상을 찾아 여러 병원을 전전하는 사태가 코로나19 팬데믹 때보다 심각하다는 데 있다. 소방청에 따르면 올 들어 6월10일까지 네 차례에 걸쳐 응급실 뺑뺑이(재이송)를 겪은 사례는 17건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상반기가 채 지나지 않은 시점에 이미 지난해(16건) 기록을 넘어섰다. 지난달 전북 익산에서는 70대 교통사고 환자가 응급수술을 할 병원을 찾지 못해 병원 네 곳을 뺑뺑이 돌다가 1시간 20분 만에 숨졌다. 경남 김해에서도 1t이 넘는 구조물에 깔린 60대 화물차 기사가 대형병원 10여 곳에서 수용을 거부당해 결국 숨졌다.
문제는 비상 진료체계 붕괴가 이제 겨우 시작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전공의들은 돌아올 기미가 없고 지친 전문의들마저 떠나가고 있지만, 더 이상 ‘수혈’해 올 의사 자체를 찾기 어려운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폭염, 코로나19 재유행 등의 여파로 응급실을 찾는 환자는 빠르게 늘고 있다. 전문가들은 휴가철이 끝나고 각 학교가 개학한 후인 8월 말부터 학교·직장을 중심으로 코로나19 확산세가 더 빨라질 수 있으며, 특히 전 국민이 이동하고 모이는 9월 추석을 전후로 큰 혼란이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남은 의료진에게 무작정 버티라고 강요할 수도, 전공의들이 돌아오기까지 마냥 기다릴 수만도 없는 노릇이다. 다른 진료과목 전문의 등을 응급실로 돌리는 등 특단의 단기 처방부터 서둘러야 한다. 경증 환자가 응급실에 몰려 중증환자가 피해 보지 않도록 체계적인 이송 안내시스템을 구축하는 것도 필수다. 응급실 파행은 사회적 불안을 야기하는 심각한 비상사태다. 정부가 이렇게 안이하게 강 건너 불구경하듯 있을 때가 아니다. 어떤 경우에도 응급의료 최전방이 붕괴되는 일만큼은 막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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