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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전기차 배터리 제조사 ‘의무 공개’ 필요하다.

시대일보 | 기사입력 2024/08/12 [09:00]

[사설] 전기차 배터리 제조사 ‘의무 공개’ 필요하다.

시대일보 | 입력 : 2024/08/12 [09:00]

[시대일보​]지난 1일 인천 청라의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 서 있던 벤츠 전기차에서 난 불이 대형 화재로 번진 데 이어, 6일 충남 금산군에서도 충전 중이던 기아 전기차에서 불이 났다. 주차된 전기차, 충전 중인 전기차에 화재가 발생하는 것은 배터리 문제라고 볼 수밖에 없다. 다만, 정황상 배터리 탓이 분명해도 과학적으로 정확한 인과관계를 증명하기는 쉽지도 않고 시간도 오래 걸린다.

 

대형 화재로 번졌던 인천 청라지역 아파트의 벤츠 전기차도 사고 나흘 뒤에야 배터리가 중국 파라시스 제품이라는 정도만 밝혀졌을 뿐 구체적 원인은 아직 조사 중이다. 이러는 동안 전기차 소유자 사이에선 자신의 차 배터리를 만든 업체가 어디인지 알아보느라 소동이 빚어지고 있다.

 

배터리의 연쇄적 폭발 현상으로 좀처럼 불길을 잡기 어려운 전기차 화재가 잇따르면서 공동주택 주민들 사이에 ‘전기차 포비아’마저 확산되고 있다. 전기차 화재 공포가 확산하고, 여기서 파생된 마찰이 빈발하기 시작했음을 고려하면 정부의 적절한 대응이 시급하다. 이런 가운데 국토교통부는 자동차관리법 시행령과 규칙을 고쳐 차량의 다른 제원처럼 배터리의 제조사를 공개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고 한다. 이는 소비자의 알 권리를 보호하고 전기차 화재를 막기 위해 꼭 필요한 조치다.

 

차주들은 비싼 값을 치르더라도 더 안전한 배터리가 장착된 전기차를 사고 싶다고 입을 모은다. 상황이 이런데 전기차 가격의 40%를 차지하는 배터리 제조사 이름을 숨긴다는 게 말이 되는가. 특히 청라에서 불이 난 전기차는 고가 수입차인데도 배터리는 세계 10위권의 중국 업체가 만든 것을 썼다고 한다. 이 사실을 알았다면 차를 구매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소비자도 있다. 그렇다면 배터리 정보를 공개하는 건 소비자 선택권 보호를 위해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제조사들도 회사 이름이 공개되면 화재 예방에 더 많은 투자를 하게 될 것이고 그 결과로 화재가 줄어들 것이다. 정부는 정보 공개를 늦출 이유가 없다.

 

자동차 제조사들은 정보 공개를 꺼리는 실정이다. 자동차관리법에도 배터리는 빠져 있다. 현대차·기아는 제조사 등 정보를 공식적인 제원표 등에는 기재하지 않고 고객 문의가 올 경우에 정보를 제공한다. 테슬라·BMW·메르세데스벤츠·아우디·폴크스바겐 등 수입차 업체들은 아예 비공개 원칙을 고수한다. 이들 대부분은 중국산 저가 배터리를 장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물론 부품 조달처 등은 영업비밀에 해당하는 측면이 있다. 그러나 화재 참사를 피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정보를 공개해 국민에게 선택할 권리를 주는 게 소비자 보호 원칙에도 부합한다.

 

중국과 유럽연합(EU)은 이미 배터리 제조사 공개를 의무화했거나 시행을 예고한 상황이다. 중국은 2018년부터 '배터리 이력 추적 플랫폼'을 구축해 관련 정보를 공개하고 있다. 소비자가 정부 홈페이지에 접속하면 제조사를 확인할 수 있다고 한다. EU와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2026년부터 정보 공개를 의무화한다고 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같은 국제기구도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제조사 공개를 촉구하고 있다. 'OECD 다국적 기업 가이드라인'은 배터리 제조회사나 원산지를 숨기는 것은 소비자를 오도하는 불공정한 표시라고 규정하고 있다.

 

한국이 이제야 배터리 제조사 공개를 검토하는 건 뒷북 대응이다.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서라도 전기차 전환은 반드시 가야 할 길이다. 그렇다면 안전대책 역시 필수다. 정부는 12일 관계부처가 모두 참여하는 긴급회의를 열고 전기차 화재 대응을 위한 종합대책을 논의할 예정이라고 하니 실효성 있는 대책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아울러 전기차 대중화 시대를 대비한 화재 진압 장비 개발과 보급에도 속도를 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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