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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갈등 조장 아닌, 조정하는 것이 정치의 최우선 가치다.

시대일보 | 기사입력 2024/08/08 [09:00]

[사설] 갈등 조장 아닌, 조정하는 것이 정치의 최우선 가치다.

시대일보 | 입력 : 2024/08/08 [09:00]

[시대일보]국민 절반 이상이 정치성향이 다르면 연애나 결혼을 할 생각이 없다는 여론 조사결과가 발표됐다. 그런가 하면 국민 세 명 중 한 명은 다른 진영 사람과는 술자리도 함께하고 싶지 않다고 응답했다. 충격적인 결과다. 사회 갈등 상황을 조정하고 화해로 이끌어야 하는 정치가 강한 팬덤 정치로 오히려 국민을 갈라치기 하다 보니 나타난 사회병리 현상이다. 안타까운 일이다.

 

보건사회연구원이 지난 4일 발표한 ‘사회통합 실태진단 및 대응방안’ 보고서는 우리 사회의 갈등과 불공정에 대한 불만이 얼마나 심각한 수준인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정치권의 각성이 요구된다. 지난해 6~8월 면접 조사에 참여한 전국 성인 남녀 3950명이 매긴 한국의 갈등 정도는 4점 만점에 2.93점이었다. 2018년의 2.88점보다 한층 심해졌다. 국민 대부분이 갈등에 시달린다고 느끼고 있는 셈이다.

 

가장 심각한 분야는 진보와 보수의 갈등으로 나타났는데 무려 92.3%가 심각하다고 평가했다. 이는 2018년보다 5%포인트나 늘어난 수치다. 어느 나라든 이념 또는 진영 간 불화는 사회의 가장 큰 갈등 요인이긴 하다지만 우리는 도저히 화합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오죽하면 절반 이상(58.2%)이 정치성향이 다르면 연애나 결혼을 할 생각이 없다고 답했을까. 국민 셋 중 한 명은 다른 진영 사람과는 술자리도 함께하고 싶지 않다고 답했다.

 

이런 분열상은 정치가 부채질한 측면이 크다. 그간 선거에서 득표율은 큰 차이가 없는데 간신히 이긴 쪽이 모든 권력을 독점하는 결과가 되풀이됐다. 전부 아니면 전무를 반복해 경험하다 보니 결국 서로 자신의 진영만 다독이며 다음에는 우리가 권력을 잡아 상대를 무찌르자는 복수의 인식만 강해져 온 것이다. 무슨 일이 일어나도 서로 상대 탓만 하는 게 익숙해져 버린 사회다. 여야를 가릴 것 없이 강성 팬덤에만 의지하는 정치가 나라를 둘로 쪼개고 있다. 이를 반영하듯 이번 조사에서 분야별 신뢰도를 묻는 질문에 국회(입법부)가 압도적 꼴찌를 차지했다. 74.1%가 거의 신뢰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같은 조사에서 국민 3명 가운데 2명은 사회가 불공정하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응답자 중 65.1%가 “전반적으로 평가할 때 우리 사회는 공정한 편”이라는 데 동의하지 않았고, 동의한 사람은 34.9%에 그쳤다. 과거 유사한 조사들의 결과와 큰 차이가 없다. 사회가 불공정하다고 생각하는 국민이 많으니 불평과 불만이 끊이지 않고 갈등이 반복되는 것이다.

 

부문별로 보면 공정성에 대한 부정적 응답 비율이 대학입시에서 27.4%로 상대적으로 낮았지만, 사법·행정 시스템에는 56.7%, 기업 성과 평가 및 승진 심사에는 57.4%가 부정적으로 응답했다. 기업 신입사원 채용이 공정하지 않다고 응답한 비율도 43.4%로 높았다. 불공정의 원인으로는 ‘기득권 계층의 부정부패’를 가장 많은 37.8%가 꼽았고, 이어 ‘지나친 경쟁 시스템’(26.6%), ‘공정한 평가 체계의 미비’(15.0%), ‘공정에 대한 낮은 인식’(13.0%), ‘계층이동 제한과 불평등 증가’(7.6%) 순으로 지적했다.

 

모름지기 정치인이라면 계층 간 갈등 조정을 통해 국론 분열을 막고 사회통합을 이뤄 국력을 키우는 것을 최우선의 가치로 여겨야 할 텐데 불행하게도 보수 진보할 것 없이 자신의 지지층을 확증편향에 사로잡히도록 조정해 갈등을 조장하고 있다 보니 사회통합은 언감생심이다.

 

지구상에 유일한 분단국가인 대한민국이 남북으로 갈라진 것도 모자라 지역감정으로 동서로 갈리고 이념 갈등과 젠더 갈등, 빈부격차 등으로 절딴날 날만 남았다는 자조 섞인 전망이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갈등을 조정해야 할 정치인들이 오히려 갈등 조장으로 자신의 잇속만 챙기는데도 내 편이면 무조건 옳고 상대는 무조건 틀렸다는 국민의 반이성·반지성 지지행태는 정치발전을 가로막는 사회악이다. 깨어있는 시민의식과 함께 정치권의 뼈저린 각성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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