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일보]영국 보수당은 지난달 14년을 버텨온 장기 집권에서 크게 패배했다.
무엇이 노동당으로 하여금 압도적 승리를 가져오게 했는가? 여기에 대한 분석이 최근 언론에 계속 보도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 영국의 EU 탈퇴 등 정치적인 문제는 뒤로 밀리고 전기와 난방비 등 2021년 이후 지속되고 있는 생활비 폭등이 가장 큰 이유라는 데 이의가 없는 것 같다.
이제는 가정에서 에너지를 사용하거나 먹을거리를 사는 데 필요한 지출이 어떤 정치적인 이슈보다 투표를 좌우했다는 것이다.
선거 풍토의 의미 있는 변화다.
사실 우리나라도 윤석열 정부가 외교와 안보에서 보여준 열성에도 불구하고 지난 총선에서 참패를 당한 것은 고물가에 대한 주부들의 분노 등 생활경제 문제가 가장 컸을지 모른다. 그 대표적인 상징이 야당 후보들마다 선거 유세장에서 흔들고 나온 대파 묶음이었다.
2년도 안 남은 지방선거, 그리고 다음 대통령 선거에서도 역시 에너지와 먹거리 물가가 좌우할 것이다.
오히려 물가 문제가 심각할 수밖에 없는 것이 소득 격차의 폭이 커지고 있는 것. 소득 격차에 따라 물가고가 주는 아픔의 강도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통계청 발표에 의하면 1997년 외환위기 이전까지만 해도 상위소득 20%가 전체 소득의 45%를 차지하고 있었는데 지금은 상위소득 10%가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빈부격차가 더 심해졌다는 것.
또한 지난 3월 조사에서 ‘나는 하위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40.5%에서 45.6%로 늘어났고, 중산층은 2020년 59.4%에서 53.7%로 줄어들었다.
하위층이 늘어나고 중산층이 줄어든다는 것은 정치적으로도 심각한 문제다. 그런 데다 지난해 우리 경제성장률은 1.4%에 그쳤다. 그만큼 우리가 나누어 먹을 파이가 줄어들었다는 것이고 여기에 물가까지 유령처럼 몰려오면 영국의 유권자들처럼 분노의 투표를 할 수 있을 것이다.
2년, 3년 후의 문제가 아니라 지금 당장 우리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지난 폭우가 기후변화로 과일을 비롯 많은 농산물이 큰 피해를 입었는데, 올가을부터 가격 인상에 영향을 줄 것이다. 그때 소비자들은 여름의 자연재해는 잊어버리고 정치인들을 탓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또다시 정치 집회에서 대파를 들고 나와 흔들어대며 선동할 것이고 사람들은 그에 호응할 것이다.
그것이 민심인 것을 어찌하랴.
그러면 정치인들은 무기력해져 탈출구를 찾는다는 것이 현금 살포의 포퓰리즘이다. 사람들은 현금 살포가 얼마나 국가 경제를 역주행시키는 것인지 잘 알지만, 그러나 막상 현금이 손에 쥐어지면 거부할 사람이 있을까?
지난번 국회의원 선거 때 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전국민 1인당 25만 원 지원을 공약으로 내걸었을 때 어떤 경제학 교수는 ‘큰 재미를 볼 것이다’라고 예언했었다.
정말 우리 정치가 미래를 위한 비전을 위해 머리를 짜는 것이 아니라 단발성 사탕물 만드는 것에만 올인하는 것이 안타깝다.
빈부 양극화가 날로 심각해지는 오늘날 그와 같은 사탕물 정책은 인기를 얻게 될 것이지만, 결국 나라는 남미의 베네수엘라 같은 하류 국가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그런데도 집권당인 국민의 힘 전당대회가 이런 현실을 극복하는 비전을 창출하지 않고 ‘김건희 문자’, ‘친윤’, ‘친한’ 등 국민을 피곤하게 만드는 저질 싸움으로 세월을 다 보냈다.
이제 마지막 끝자락에선 전당대회를 맞은 국민의 힘이 과연 어떤 모습을 보여줄 것인가. 일직이 함석헌 선생은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라고 했는데 정당도 생각하는 정당이라야 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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