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원 군공항은 조속한 폐쇄와 효율적인 대안을 즉각 마련해야 한다 +. 우리의 후손들에게 매화 향기와 천혜의 갯벌 습지를 물려 주기를 소망한다
필자는 경기도 화성시 우정읍 매향1리에서 태어났다. 옛지명 고온리 앞바다에서 11대째 고기잡이하며, 삶을 영위하던 어부 집안이었다. 시골 중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아버지 손에 이끌려 작은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가 고기잡이를 했다.
그러나 삶의 터전인 마을 앞바다를 미군 사격장에 빼앗겼다. 한·미당국이 한·미상호 방위조약과 한·미행정협정이라는 외피를 쓰고, 국방안보라는 미명으로 주민들이 누대에 걸쳐 가꾸고 일구어 왔던, 마을 한가운데 문전옥답 29만평과 마을 앞 690만평의 황금어장을 강제 징발과 수용하고 조업 통제했다. 주민들 생존권을 무참히 짓밟았다. 뒤에야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는 걸 알았다.
큰 의미로는 전쟁을 극복하고 나라의 평화를 지키기 위한 것이라고 했으나, 우리 매향리 일대 주민들의 평화와 인권을 짓밟는 일이었다. 역설적으로 평화롭던 경기만 어촌마을에서 50여 년간 전쟁과 같은 끔찍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미 공군 폭격장, 쿠니사격장이 들어섰기 때문이다.
이는 지역과 계층 간의 올바른 평화 관계가 아니다. 매향리 지역에서 폭격훈련은 사람의 목숨뿐만 아니라, 자연 생태계에도 치명적인 파괴를 야기하고, 인간과 자연 간의 평화 관계마저 파괴했다.
1951년 8월 어느 날 古溫里(고온리)상공에 나타난 미군기가 마을 앞 구비섬에 폭탄을 투하했다. 마을 앞 해안에서 불과 500여 미터 떨어진 거북이 형상의 구비섬에 뜨거운 폭탄을 투하하기 시작하면서 오랜 옛날처럼 사람이 살기에 따뜻한 마을, 고온리(古溫里)가 불지옥의 高鎾里(고온리), 고통스러운 苦鎾里(고온리)로 급전 직하했다.
주민들은 처음에는 깜짝 놀라면서도 가슴 한편으로는 안도했다. 1950년 7월 고온리(매향1리 옛지명) 마을 야산 정상(일명 사투지)을 점령하고 있던 북한 인민군 1개 중대 병력이 퇴각한 지 1년여가 지나 전쟁은 끝난 것으로 알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쟁이 끝나, 폭탄을 쓸 때가 없는 미군이 폭탄을 이곳에 갖다 버리나 보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이후 미군 폭격기는 장장 54년간 매향리 상공에서 그 쓸데없는 총·폭탄을 퍼부었으며, 그로 인한 참혹한 일들이 일어났다. 그 피해와 고통을 4가지로 나누어 본다.
첫째, 인명 피해 : 임신 8개월의 임산부가 작은 폭탄이 등에 맞아 즉사하고, 12세 소녀가 미 공군의 불발탄 파편에 다리를 맞아, 영구 장애자가 됐다. 또한, 또 다른 불발탄에 14, 15세 소년 4명이 한꺼번에 참혹한 사망하고, 1명이 크게 다치는 등 수십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그러나, 한·미당국은 보상은커녕 장례비조차 지급하지 않아 그의 부모는 누구 집 자식인지도 분간할 수 없는 갈기갈기 찢어진 시신을 가마니에 담아 지게에 져다가 해안 사구에 묻어야 했다.
둘째, 경제적 피해 : 연간 250일 이상 하루에 약13시간 이상 밤·낯없이 수 백회의 폭격연습은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1980년대 이후 금요일까지)마을 한가운데의 문전옥답 29만평과 마을 앞 갯벌 어장 690만 평에서의 조업 통제로 인하여, 주민들의 경제적 궁핍함은 배고픔의 고통으로 이어졌다.
셋째, 소음 피해 : 미군 전투기의 폭격훈련으로 발생되는 굉음은 극심한 소음 스트레스가 되어, 주민들의 성격이 포악해지고, 자살로 이어지면서 자살자의 숫자가 오폭과 불발탄 등에 의한, 사망자(12명)보다도 더 많이 발생(60여명) 했다.
넷째, 자연생태계 파괴 : 매향리에서는 주민뿐만이 아니라, 자연 생태계에도 치명적인 파괴를 야기했다. 마을 지명이 말해 주듯이 천혜의 고온리(매향리) 자연환경과 풍부한 어족자원의 보고(寶庫)인 자연 생태계를 무참히 파괴했다.
그러다가, 이 땅에 민중들의 민주화 항쟁(1987년)에 의한, 군사독재 체제가 무너지는 과정에서, 매향리 주민들도 거센 민주화 물결에 힘입어, 해방과 평화을 향한 생존권 투쟁의 배를 띄우게 됐다. 반공과 냉전 이데올리기의 매섭고 거친 격랑의 바다에 해방과 평화를 향한 조각 배를 띄워 키를 잡은 선장은, 매향리 앞바다에서 11대째 고기잡이 하며, 살아온 어부 집안의 청년 전만규였다.
1988년 6월 필자가 ‘매향리 청년회’이름으로 발행한 “주민에게 드리는 글” 제하의 숭고한 생존권 회복 운동을 주창하는 유인물 배포와 투쟁의 깃발을 치켜들었다. 그야말로 외세와 군사독재 정권에 의한, 반공과 냉전 이데올리기의 멍에를 주민들 스스로가 벗어 던지는 역사적 사건이 터진 것이다
서해안의 작은 갯마을 어부가 세계 최강의 미군을 상대로, 전투기 폭격연습의 지독한 고통과 피해에 대하여 저항으로 극복하며, 평화 찾기 17년간의 모진 투쟁을 이끌어왔다. 필자는 고향 매향리에서 미군 전투기의 포연을 거둬내고, 매화 향기를 되찾기까지 겪었던 이야기를 본 지면을 통해 아주 짧게 소개하며, 평화의 소중함을 전하려고 합니다
매향리 미군기지의 명칭은 쿠니사격장이며, 알파벳 철자는 ‘KOON-NIRange’이다. ‘쿠니’는 매향1리의 옛지명 고온리(古溫里)에서 따온 것이며, 미국식 발음이다. 천혜의 자연환경은 옛날부터 사람 살기에 따뜻한 마을이라고 해서 지어진 ‘古溫里’가 미군 조종사들의 파란 눈에는 전투기가 폭격연습을 하기에 최적의 조건으로 뜨거운 폭탄을 투하하는 高鎾里로 발전된 것이다
쿠니사격장은 미군 조종사들의 실전과 같은 훈련이 가능한 동아시아에서 A급 훈련장으로 미공군 태평양 사령부 산하 미제7공군의 괌·오키나와·일본·태국·필리핀 등 동아시아 주둔 미공군 기지에서 발진하는 전투기 조종사들의 폭격 훈련을 평가받는 국제사격장으로 활용했다.
1968년 미군전투기 사격장 확장 조성공사로 매향리 주민들은 헐값으로 강제수용 또는 무상 징발당했으며, 미군 전투기 사격장으로 조성된 후에는 미군 부대장의 허가를 받고서야 공휴일에 철책 넘어 미군 기지로 들어가 농사를 짓고, 국방부에 비싼 임대료를 내는 소작농으로 전락했다.
1988년 12월 12일 쿠니사격장을 점거시위 농성을 시작으로 주민들의 원성이 대내외에 표출됐다. 특히, 필자가 주도한 미군 폭격장 점거시위 사건으로 미군 전투기 폭격훈련이 방해를 받게 되자, 미군 측은 보복조치로, 필자가 경작하는 논과 모판에 미군 트럭으로 모래와 자갈을 실어 퍼붓는 만행을 저질렀다. 그로 인한 주민들의 분노는 더욱더 격분해 즉각 미군기지를 야간 습격했다.
즉, 쿠니 미군기지 철책을 뜯어내고 벌인 기습적인 야간 시위는 레이다 장비 등 기지시설물과 주방 시설 등 닥치는 대로 파괴하며 역보복 사건으로 격화됐다.
그러자 오산 미군 사령부에서 완전무장한 미군의 기동 타격대가 헬리콥터로 출동하는가 하면, 400여 명의 경찰 경력이 긴급 투입되어 대 간첩 작전을 펼치듯 마을 전체를 쑥대밭으로 만들며, 주민대표 전만규 위원장 등 지도부를 구속기소하고 주민 20여 명을 입건했다.
한국 정부는 미8군 사령부에 사과문을 보내고, 행정 기관을 통해 시위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제출한 주민들에 한해 미군기지 내 경작 활동을 제한 통제하는 보복 조치로 이어갔다.
이 사건 이후로도 크고 작은 오폭 및 불발탄에 의한 인명 피해와 재산피해 발생으로 주민들은 미군기지 정문 앞에 천막 시위 농성을 벌이며 근본적인 대책을 지속적으로 요구했다. 한·미 배상심의위원회로부터 수백 가구 주택 파손의 수리비 일부(95년 당시 3억5천만원)가 지급됐다.
그러다가 2000년 5월 8일 훈련 중이던 미군 전투기(A-10)가 엔진 고장으로 오폭(500파운드 폭탄 6기)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으로 주민 6명이 부상을 입고, 가옥 수백 가구가 파손됐다.
그러나 한·미 합동조사단은 6월 1일 국방부 기자 회견장에서 발표하기를 “5월 8일 오폭 사건으로 매향리에서 그 어떠한 피해도 발견하지 못했다”며 매향리 주민들과 전 국민을 얕잡아 보는 대국민 기망을 한 것이다.
이때, 필자는 주민 대책위원장으로서 한·미합동 조사단의 기자회견을 반박하는 현장 기자회견을 마친 직후 미군기지 철책을 넘어 들어가 우리 매향리 주민들에게 압제의 상징이던 주황색 깃발(미군 전투기 사격 깃발)을 끌어 내려 찢으며, 대내외에 제2의 매향리 대투쟁을 선포했다.
필자는 현장에서 즉시, 사복 경찰들에게 체포되고 구속기소 됐지만, 그날 국내외에 방송된 매향리 대투쟁의 선포 기자회견은 국내외적인 굵은 민중연대 투쟁의 도선이 됐다.
매향리는 남·북 분단의 냉전 이데올로기 표상이며, 외세와 국가 권력이 합작해 저지른 부당한 폭력에 희생당한 상징이었다. 이를 계기로 국내외적인 여러 평화·인권·환경단체는 물론 시민사회 및 종교계와 청년학생, 노동단체들이 매향리 주민들과의 민중연대 투쟁으로 이어져 국내외적인 반전평화의 화두요 이슈며, 반미 투쟁의 상징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 결과 2000년 8월 농섬을 제외한 육상 기총사격 훈련이 중단됐으며, 2004년 3월 대법원에서 ‘국가는 주한 미군 전투기가 야기한 소음피해로 인해 오랜 세월 특별한 희생을 겪은 매향리 주민들에게 배상하라’는 승소 확정판결을 함으로써 대법원 현관에 각인된 “자유·평등·정의”가 매향리에도 생겼났고, 비로소 매향리 주민들도 인간이며 대한민국 국민임을 확인받았다. 또한, 철옹성 같았던 매향리 미군 전투기 국제폭격장은 54년만인 2005년 8월 완전 폐쇄됨으로써 해방과 평화를 맞이했다.
2024년 3월 현재 쿠니사격장이 폐쇄된 지 19년의 세월이 지났다. 짧지 않은 동안 매향리에는 많은 변화가 찾아왔다. 폭탄이 떨어졌던 농섬 앞 갯벌에는 세계적인 희귀 보호종이며, 천연기념물 검은머리 물떼새, 저어새, 알락꼬리 마도요 등 각종 철새가 돌아왔다.
매향리 주민들은 화약연기 거둬내고 사라진 매화 향을 찾기 위해 10년에 걸쳐 7만 그루의 매화나무를 식재했다.
쿠니사격장 터에는 아시아 최대 규모의 유소년 야구장인 ‘화성드림파크’가 들어서 국내외적 대회를 벌이며, 총폭탄이 터지던 폭발음 대신 유소년들의 즐거운 타구와 함성이 가득하다.
이제 매향리 주민들은 생존을 위한 투쟁으로 되찾은 평화를 기리고 보존하기 위해, 반환 미군기지 존치 건축물들과 매향리 평화기념관을 화성시와 함께 뮤지엄 콘텐츠 시설 조성사업을 금년 8월에 완공함으로 매향리 미군기지 반환 기념일인 올해 8월 30일 개관을 준비하고 있다.
우리 매향리에서 평화·생태공원 및 평화기념관 의미는 자연과 인간이 함께 공존하는 공간으로서 전쟁과 파괴 포연속의 비탄에서 생명·평화의 매화향기 피어 오르도록 하는 것이다. 또한, 매향리 주민들의 지난한 삶에 역사를 기록하고, 깊은 상처를 치유하는 공간이 될 것이다.
+. 반전·평화를 갈망하는 지구인들의 소망이 담긴 공간 +. 반전·평화를 실현하기 위한 국내외적인 굵은 민중연대 투쟁의 역사를 기록 하는 공간 +. 미래 세대에게 반전·평화 및 인권과 환경보호에 대한 교육적인 공간
전쟁과 군사적인 폭력으로부터 피해와 고통을 당한 희생자들이 안식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야 말로, 매향리 평화생태공원 및 매향리 평화기념관의 의미인 것이다. 매향리 평화·생태공원과 접속된 화성호 습지의 억새 풀과 각종 철새가 함께 만드는 아름다운 풍경은 천혜의 힐링 공간이 될 것이다.
특히, 매향리 해안은 갯벌습지, 염습지, 기수습지, 민물습지, 호수가 모두 존재하는 독특한 자연환경 덕분에 약 44종의 조류와 최대 97,000여 개체의 다양한 생명체가 서식하는 소중한 지역이다.
매향리 갯벌은 수산자원 생산 외에, 오염물질 정화, 탄소흡수, 재해방지, 생태관광 및 자연 휴양의 문화적 가치는 신이 내려준 축복의 땅이다. 우리나라 갯벌의 가치가 16조 이상의 경제가치가 있다고 한다. 그중 화성 갯벌 면적(약35㎢)의 가치는 약 2,200억원 이상(단위면적당 63억*35㎢)의 가치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수원시의 일부 몰지각한 정치인들과 토건 세력들이 수원 전투기 비행장을 화성호 간척지로 이전하겠다는 탐욕에 필자는 분노를 넘어 절망과 억장이 무너져 내린다.
장장 54년간의 미군 전투기 폭격연습장으로 극심한 피해와 고통을 입었던 우리 매향리 주민들의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수원 전투기 비행장을 이곳 매향리 화성호 간척지로 이전하여 조성하겠다는 야욕은 인간이 아닌, 짐승의 심보인 것이다.
물론, 수원시민들이 겪는 수원 전투기 소음피해 문제는 하루속히 해결해야 하며, 수원 군공항은 조속히 폐쇄돼야 한다.
수원 전투기 비행장은 일제가 중국 만주를 침공하기 위해 건설한 것인데, 6·25 남북 전쟁 때 미군이 접수해 운용하면서 1970년대 말까지 수원 군공항에서 발진하는 미군 전투기들이 각종 총·폭탄을 싣고 매향리로 열심히 날아와 발사 투하 훈련을 했다.
화성시 갯벌과 습지는 우리나라가 보유한 최대의 보물이며, 2000만 수도권 시민들의 쉼터가 될 천혜의 자연 자원이며, 수도권 시민들에게 제공되는 식량 창고다.
즉, 1991년 농림수산부와 국회 입법 고시로 농어촌진흥공사에서 발주한 화·옹지구 간척지는 수도권의 도시 개발로 잠식되는 농경지 대체와 21세기 남·북통일을 대비해 식량안보를 위한 절체절명의 국가사업이라는 미명으로 인근 영세 어민들(1,700여세대)의 생존권마저 짓밟으며 강행한 사업이었다.
그런데 불과 30여 년 만에 식량안보의 명분은 사라지고, 허울 좋은 민군복합 국제공항이라는 꼼수로 정경 유착의 탐욕을 위해 국민과 인근 영세 어민들을 또다시 기망하는 행태에 분노를 금할 수가 없다.
매향리 갯벌과 화성호 간척지는 다음 세대들에게 물려 줘야 할 소중한 자산이므로 우리 시민 모두가 관심과 대동단결로서 끝까지 지켜내야 한다. <저작권자 ⓒ 시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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